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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세븐틴은 아주 NICE

_봄밤 2016. 9. 18. 16:12



올해 2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나얼의 왼쪽 얼굴을 오래 생각할 무렵(브라운 아이드 소울 발렌타인데이

), 긴 코트를 한번 더 에워 잠그며 참 이상한 일이구나, 생각했던 것이 하나 있다. 어두워진 올림픽 공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그곳엔 내가 십대였을 때에도 본 적이 없는 수천명의 십대 여성들이 있다. 그들과 한쪽으로 걸어가던 장면. 같은 날 올림픽 경기장에서는 <세븐틴>이라는 보이그룹의 콘서트가 있었다. 이 두 그룹 팬층의 연령대는 못해도 10살 이상의 시간차를 확보하며, 같은 날 같은 일대에서 열리는 콘서트라는 만에 하나 가질만한 우려야말로 기우인 것처럼 여기며 각자 성공적인 인원을 유치했을 것이다. 


눈보라가 치는 날이었다. 콘서트는 비슷한 시간에 끝이 나 체조 경기장과 핸드볼 경기장에서는 꾸준히 꾸역꾸역 사람들이 밀려나갔다. 사람들은 집에 돌아가기 위해 그 넓은 공원을 심심치 않게 채우며 역까지 행렬을 이뤘다.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무척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검은 생머리의 어린 팬들은 허벅지가 잘 보이는 짧은 바지를 입었던 것 같은데 설마 아니겠지, 스웨터에 울코트에 털장갑을 끼워도 조금도 따뜻하지 않았던 날이었다. 


그날 버스는 만석, 택시는 한 대도 잡히지 않았고 지하철 입구는 들어가기 무서울 정도로 사람이 붐볐다. 집에 가야겠기에 달리 방법이 없어서 지하철을 탔는데 입구에서 겁준 것 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고, 집에 돌아가는 10대 팬들이 손에는 모두 같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아이돌이라고 하면 얼마전까지 빅뱅의 멤버가 몇 인지도 몰랐던 문외한은 <세븐틴>이라는 이름에 실소를 했던 것이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름은 빅뱅까지다. 우주의 탄생 정도는 엿보는 기개가 있어야지. 예의 빅뱅은 중의적이라 나이가 몇이든 발설에 문제되는 것은 없어보였다. 그런데 설마 17명이나 나와서 춤을 추는 건 아니겠지. 


올림픽 공원 SK 핸드볼 경기장은 오천명 수용가능하다. 기사에 따르면 전석 매진되었다고 하니 나는 그날 한눈에는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흩어져 오천명이나 되는 소녀팬들을 보았던 것인데, 그들은 전석 88,000원을 아낌없이 지불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티켓팅 전쟁을 치루고 이곳까지 모였다. 대충 생각해도 십만원은 있어야 참관 가능할 행사 앞에서 평소 교복입는 그네들의 사정을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마음 먹는다면 못이룰 것이 없었고. 그 보다는 언뜻 생각해도 떠오르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븐틴>을 보기 위해 몰려온 <세븐틴>의, 혹은 그네들을 좋아하는 십대 여성 팬들이 만들어내는 동력이 궁금할만했을 텐데도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야 말로 이상한 일이다. 호기로운 일이었지만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 같았고, 그렇지. 언젠가 나는 세븐틴 노래를 들어도 그것이 세븐틴의 노래인지 모를 것이 분명해 보였다. 


추석을 지나는 사이 동생은 동영상 하나를 자꾸 보여주려고 했다. 요새 빠진 아이돌이라며 <세븐틴>을 말하는데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니, 아니 웬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턱밑에서 내게 <세븐틴>을 가로되는 자가 있었다. 대체 그 이름을 무슨 수로 잊어버릴 수 있나. 그런것 안본다며 자꾸 내빼다가 결국 보게 되었고 그 영상에 나도 모르게 '귀엽다'고 말해버린... 일화가 있다.


아직 기억하는 나의 태도와 정량의 나는 그런 기억 따위에 상관없다는 듯 예전의 선택과 마음을 뒤집는다. 예고없는 변화에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 때문에 고통받는다. 세븐틴 세븐틴~을 연발하며 그들의 노래를 연속 재생 걸어 놓는 사태에 이르되,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감동 옆에 세븐틴을 처음 알게 되고 실소했던 것... "맞잡은 두 손에 원처럼 우린 끝이 없네" 내가 십대라도 어디 교과서 구석에 적어두거나 어떤 편지 밑에 추신해놓고 써놓을 말들이 그들의 가사에 있다. 뭐 그렇다고 모두 좋다는 것은 아니고. 그리고 세븐틴은 17명이 아니라 13명이다. 그들의 퍼포먼스는 즐거운데, 이 '즐겁다'는 마음은 이제 내것이기 때문에 나는 <세븐틴>에 대해서 생각해 볼 이유가 충분해졌다. 어떤 층위에서 발한것인지, 도덕적으로 문제는 없는 것인지 살피고 나서 말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일단은 쏟는다. 민구스런 마음으로 이일을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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