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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역에서 내장산을 왕복하는 171번 버스


서울의 귀퉁이 

북로 23길 다음 빌라에는 슬프도록 큰 창이 있다. 반경 20km 동급 투룸들 중에서 가장 창이 크며, 쓰리룸을 합쳐도 창이 크고, 근방에 있는 18평 24평 한마음 아파트와 길 건너 선정 아파트 베란다 통창과 맘먹을 정도로 크다. 이 창은 길을 향해 났는데, 그게 얼마나 크냐면 간단히 말해 벽 대신 창이라고 하면 알까. 또한 다음 빌라 201호는 지상에서 170cm올라와 있어 가까스로 1층을 면했지만 1층과 다름없는 2층을 가장한다. 그 집 거실에 앉아 있으면 길을 지나다니는 이들의 정수리 가마가 잘 보이며, 건너편 편의점에서 콜라나 맥주캔을 따는 소리가 마치 내가 먹는 듯 상쾌하게 들린다. 바깥에서 그 길을 지나는 이들은 이상한 집에 사는 이의 허벅다리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서북향의 집은 서북향 벽면을 모두 창을 냈으나 해가 머물다 가는 시간은 고작 두어시간 밖에 안된다. 그마저도 집안까지 들어올 수 없는 운명이다. 


창은 그저 큰 것이 좋다고 여긴 세입자는 후에 알게 된다. 어느 정도 큰 창은 햇빛을 많이 받으려는 것이겠으나, 기이하게 큰 창은 햇빛 들어오지 않음의 표지라는 걸. 웬만큼 크게 내지 않고서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다 뚫어버린 거다. 어차피 들어오지 않는 햇빛, 차라리 창이 작았더라면 냉난방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지어졌다면 집을 구하는 이들은 사방이 시멘트로 막힌 이 집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겠지만. 창을 줄였더라면 적어도 건축가로서의 양심은 지킬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놀랍게도 건축가는 제 이름 뭐가 자랑이라고 이 건물에 청동으로 석자를 떠놨다. 걷다가 안이 훤하게 다 들여다보이는 큰 창을 보면 서글퍼진다. 지을 수 없는 장소에 집이 있고 ...없는 곳에 사람이 산다. 철골과 시멘트도 아끼고. 개이득. 모자란 사람은 그런 집을 잘도 계약하고는 여름보다 더 덥고 겨울보다 더 추운 서글픈 계절을 난다. 


<북로의 집> 中에서





1. 정읍에는 기차역이 있다. KTX정차함. 2. 정읍은 전주와 광주의 중간지대다 3. 정읍에는 내장산이 있다.


<정읍사>의 신비감을 제외하면 정읍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세 가지 정도의 특징은 머리 가슴 배처럼 대략적으로 정읍의 윤곽을 완성한다. 정읍역에 도착해서 사정없이 내리쬐는 햇빛, 절전 3단계쯤으로 생각되는 영원같은 에스컬레이터의 느림, 그리고 1층에 닿는 순간 거대하게 자리한 <정읍 종합관광센터>에 나는 매일 읽고 슬픈 <북로의 집>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 들키지 않게 북로 23길 다음 빌라의 크나큰 창이 겹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규모, 종합관광센터는 다시 없을 규모로 역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작게 지으면 더욱 지나쳐갈 것이고, 이렇게라도 지어놔야 두 사람쯤 들어올 것이다. 관광센터는 정말 중요한 지역에 작심으로 지어진 것이 아닌 이상, 한 두 사람이 들어가 있을만한 작은 지붕이다. 각기 언어로 작성된 책자가 꽂혀진 철망이 있고...실제로 관광안내센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근방에서 가장 가까운 공용화장실이나 두 세시간 뒤면 쓸모없어지는 지도다. 종합관광센터가 이렇게 크게 지어진 이유는 필시 정읍에 좀처럼 관광 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약간의 슬픔은 웃을 수 있다. 내색하지 않고 들어간 정읍 종합관광센터는 여행객들의 짐을 맞길 수 있는 사물함이 있었다. 널찍한 안쪽은 바깥의 열기와 달리 시원했고, 두 명의 여자가 데스크를 안내하고 있었다. 사물함을 이용하고자 말씀드리니 키를 내주셨다. 그가 가방을 맡기는 동안 정읍의 9경이나 10경을 알리는 표지를 좀 읽고 나왔다. 깨끗하고 정돈된 실내. 안내센터는 완전했다. 이제 이것을 볼 사람만 있으면. 짐을 맡기고 온 그는 작은 쪽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 사물함 번호가 적힌 거였다. '열쇠는?' 하고 물으니 '열쇠를 가져가셨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이곳의 룰을 잘 따르고 있다. 짐도 열쇠도 모두 정읍 종합관광센터에 맡기고 나왔다. 문을 닫기 때문에 6시까지 돌아와야 한하는 새로운 미션도 생겼다. 그는 이 쪽지를 여행 내내 소중히 보관했다. 


아직 정읍 종합관광센터에서 열 발자국도 떼지 않았는데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센터에 계신 두 분은 말투가 약간 어눌했다. 약간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 더 뜨거운 햇빛에서 유년을 보내고 수년 전 이주해서 정읍에서 살고 있을 여자였다. 일인가. 시市가 관리하므로 어느 곳보다 타당할 것이다. 어쩌면 자원 활동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대면의 직업에 대면할 이가 없는 좋은 직업이겠으나. 어눌한 목소리로 '정읍'을 소개하는 동남아시아의 어떤 여자, 라는 풍경의 생경함을 이야기 하려고 했으나. 그러나 이들은 스무 살만 되면 정읍을 떠나버릴 이곳의 아이들보다 더 오래 남아 정읍의 사람이 될 것이다. 나고 자란 곳을 소개할 정읍의 젊은 이가 더 이상 없다는 대답도, 이름도 긴 정읍 종합관광안내센터는 정읍 사람이 없는 유일한 정읍, 자신들의 언어로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소라는 것도. 슬프려고 하면 세상엔 얼마든지 슬퍼질 수 있는 일이 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우니.


정읍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약간'들이 만들어 내는 틈 사이로 여간하지 않은 햇빛이, 햇빛이 쏟아져내렸다. 




1화 정읍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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