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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만큼 긴 꼬리의 다람쥐. 내장산에 산다.


내장산이 어땠는지 바로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우리는(이 아니라 나는) 내장산은 정읍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여행의 마지막에 놓고 있었다. 마지막이라고 해봐야 정읍사 공원 - 내장산의 루트였지만. 내장산의 계곡을 생각하며 돗자리를 챙겼고, 물에서 최대한 놀기 위해 짧은 바지를 입었으며, 또 간단하게 자두나 복숭아 같은 과일을 먹으려는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여행의 제일 걱정은 내장산 계곡을 찾지 못하거나,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곳에 있을까였다) 간단하게 정읍사 공원을 간 다음 '장을 보고' 가자고 마음 먹고 있었던 것. 그런데 어이없게도 정읍사 공원을 갈 수 있는 버스를 찾을 수가 없었다. 포털 지도의 한계인 것인지, 순환1, 101번, 272번 버스를 정읍역 정류장에서 타라고 나와있는데 막상 실제 정류장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것. 해는 내리쬐고,,, 몇 번이나 알림판을 읽고 나서 그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택시를 타고 가자!'라고 말했다. 이보시오. 방금 정읍에 떨어졌는데 오자마자 택시라니. 치트키는 쓰지 맙시다. 이때까지 택시=치트키 설은 꽤 그럴싸했다. 정읍사 공원가는 버스를 찾지 못해 결국 내장산을 먼저 가기로 했다. 도착한지 삼십분 째, 정읍역 버스정류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냥 얼떨결에 내장산 가는 버스가 와서 저걸 타야겠다 싶었다. 장을 보는 일은 버스를 타고 나서 생각났다. 나의 자두, 나의 복숭아... 아직 희망을 놓지 않았던 건 버스에서 내리면 그 근처에서 뭐라도 살 수 있겠지라는 근거 없는 희망이었다. 


내장산에 가는 버스는 멀리서도 알아보기 쉬웠고, 정류장 표지에도 잘 나타나 있었다. 버스는 약 십오분 정도 시내 곳곳을 돌다가 외곽으로 빠진다. 그는 농협을 7개나 봤다고 귀엣말을 했다. 골목마다 정거장마다 출현하는 농협을 셌던 눈썰미에 웃고 말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정읍에 있는 농협의 수를 알아봐야겠다고도 했다. 대체로 낮은 건물들, 가장 높은 건물은 이미 역 주위에 무슨 모텔의 이름으로 다 있었다. 버스는 몹시 느렸다. 느끼기에 약 30km의 속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당장 쉬어도 이상하지 않을 소리의 버스는 여름에 맞서고 있었다! 밀려도 이상하지 않을 속도에 힘겨워 보이는 고개에도 버스는 에어컨을 끄지 않았던 백발의 기사님. 그렇게 몇 개의 경사와 곡진 도로를 지나서 우리는 내장산 입구라고 생각했던 내장산 터미널에 도착했다.


소싯적 계룡산을 몇 번 놀러간 적 있는 나는 1. 버스에서 내리면 2. 곧바로 탐방로를 올라갔던 기억으로 이곳 역시 그럴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주차장, 화려한 이름의 회관과 장들 사이에서 입구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내장산 터미널.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입구까지 2.9Km를 걸어야 했다. 주변에 물어보기를, 한 2Km 정도 걸으면 된다고 들었다.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 그러나 그 2Km를 걸을 수 없으면 우리는 내장산 입구도 못가보고 온 셈이 되기 때문에 가야만 했다. 이곳에는 대체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얼마나 가야하는지 표시가 잘 안되어 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여기서부터 걸어올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것 같다. 삼키로에 가까운 거리를 걸어야 비로소 내장산 입구에 갈 수 있다고 하면 누가...누가 신나서 올라가겠는가. 그나마 함께 내장산 터미널에서 내린 사람들이 위로가 되었는데 편의점에 다녀오고 보니 함께 내렸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무섭도록 같은 외관에 같은 식단을 파는 식당들 사이에서,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없는 거리의 태평회관 전주식당 전일식당 한국관을 지나서, 날은 전국적으로 올 여름 최고의 폭염을 기록하고 있었다. 우리는 내장산 탐방안내소에 가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그는 줄곧 GPS를 키고 우리가 제대로 걷고 있는지, (길은 하나 밖에 없었지만) 얼마쯤 왔는지 종종 보여주었다. 그게 몇 키론지는 말하지 않았다. 사기를 위해서, 우리의 사기를 위해서 그랬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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