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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정읍기행

_봄밤 2016. 8. 17. 00:18

내장산. 내장산을 나가는 길인지, 들어가는 길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 정읍 갈까 네가 말했을 때.

 

'우리'부터 벌써 기쁘기 시작해 '정읍'이라는 알지도 못하는 곳이 돌 자분자분 깔린 우물 보듯 예뻤다. '갈까'라는 말 앞에 무엇이 와도 가고 싶었을테니까. 시시함,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어도 좋지만 다만 생각하고 있는 '어떤 것'을 들었다. 나는 그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들을 기다렸다. 소란이 쌓이기를. 마음이 하나 둘 놓이기를 바라고 있다. 너는 드디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실은, 네게로부터 정읍의 이야기는 벌써 세 번째였다. 한 번은 넌지시 '정읍사'를 아느냐고 했다. 나는 고려 가사인가. 라고 대답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고려시대에도 불렸다). 이어 '진데를 밟지 말라'는 구절을 말해 일단은 아는 것처럼 이야기 했다. 너는 '백제 노래'같다고 했다. 물었을 때, 아마도 너는 이미 백제 노래인 것을 알고 있었고 전문도 얼추 욀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와 백제라는 말도, 백제의 노래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가진 오해일텐데, 네가 아는 것, 좋아하는 것, 오랫동안 지켜본 것과 연상이 잘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읍과 백제로 이어지는 연상은 오히려 내가 더 가까운 것 같지만 그러나 정읍, 발음하자마다 입을 닫게하는 미지의 단어에 나도 별 친연이 없다.

 

이 정읍 이야기는 오월의 어느 날로 거슬러 간다. 여행에 대해 이야기 하는 내게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말로 여러 차례 너를 이야기했지만 언젠가 너는 겨울, 새벽차로 혼자 경주를 다녀왔을 때, 거의 아무도 없는 시외버스에 세 시간 넘게 덜컹이다가 적막에 내렸다. 편하고 안락한 밤과 집을 떠나 어떻게 여행을 해야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경주를 헤맸을 것이고, 기특하게도 그때 돌아본 경주 지도를 지금껏 갖고 있는걸 보면 여행을 아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중학교 때인가 수학여행으로 갔을 경주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서 가고 싶었다고 했다. 당분간 네가 어디를 간다면 지금의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예전의 네가 도착했던 곳을 확인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정읍사로 비롯해 가고자하는 정읍과의 관계를 생각해보았다. 너는 정읍사로 비롯된 정읍에 가려한다. 행상하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높은 산에 올라 아내는 빌었다. 남편이 혹시 밤길에 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 끝에 아내는 망부석이 된다. 이 가사는 '아내의 지고지순한 사랑', '깊은 충절'을 은유하는가하면 '남녀상열지사'로 해석이 된다. 


두 번째 정읍은, 정읍 다녀와 쓴 어떤 이의 글을 넌지시 보여준 일이다. 그 글은 아주 길었고, 정읍의 구석구석을 다녀왔는데 첫 문단을 아주 잘 써 나는 눈이 커졌다. 모 대학원에서 동양사를 전공하는 이라고 했다. 정읍이나 정읍사에 대한 것은 잘 모르겠으나, 분명히 잘 쓴 글이었으므로 나는 좋은 글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너는 역시 너무 길어서 다 읽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볼 것이 많은 곳이라는 생각은 했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볼 것이 많은 곳인 것 같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 나는 전문을 다시 찾아 보았다. 성실한 글이었다. 글쓴이가 본 것만큼 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정읍사와 상춘곡, 옛 노래를 따라서

 

세 번째 정읍은 기억나지 않는다. 두 번째 정읍과 세 번째 정읍 사이에는 두달하고 보름의 시차가 있다.

 

정읍을 조만간 있을 일들로 기록해둘 수 있을 것 같다. 벌써 나는 정읍을 가는 차안이었는데 그 차에는 빛이 잘 들고 물도 넉넉해서 세 시간이든 네 시간이든 줄곧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그곳에선 우리가 움직이되 둘을 벗어나지 않으며, 둘을 침해받지 않는다. 정읍에는 무사를 기원하며 돌아올 것을 빌었던 사람이 있었고, 그이는 마침내 돌이 되었다. 바랐던 사람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던 것 같다. 기다린 사람의 기다림이 끝났다. 


우리는 둘 다 돌이 아니다, 아무도 돌이 되지 않았다. 아직 기다릴 것이 남았다는 이야기. 세 번째 정읍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다림과 기억의 친연을 생각해본다. '정읍'할 때 예쁘게 지나갔던 상, 물이 고인 둥근 돌, 빗금의 틈을 이루는 바닥은 우물이 아니라 백제시대 석곽묘 바닥이었다. 우물의 바닥은 아주 촘촘한 니질토로 이뤄져있다. 그것보다 아래는 아주 작은 모래들의 층이다. 네가 정井을 이야기 할 때 묘墓를 생각하고 예쁘다, 예쁘다, 기억의 바닥을 쓰다듬었다. 우리는 곧 어떤 정읍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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