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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읍역. 

1번 표사는 곳은 문을 닫았고 2번 표 사는 곳은 열렸으나 파는 이가 없고 3번 국가유공자, 장애인이 표사는 곳만 열려 있다. 

3번 창구에 줄을 길게 선 일반인들. 





구름도 없이 몸 전부 햇빛에 내던져진 내장산은 녹색 아래도 녹색을 감추고 있다. 이런 햇빛에도 나뭇잎은 녹색 그 이상이 되지 않는걸까. 대체로 이런 궁금을 안고 자박자박 걷는 길이다. 어느 한계에서는 광합성량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고. 그 한계는 35도. 광합성=녹색을 연상하는 얼토당토한 이해지만, 그때 정읍의 온도가 그랬으니까 아마 내장산은 2016년 최대 광합성을 하고 있었을텐데, 그것은 아마도 이파리 가장자리가 끝까지 이 햇빛을 담고, 가장 끝까지 펼쳐져 산을 크게 하는 일이었을 거다. 가을이 되면 이 부함이 버석하게 줄고, 겨울에는 좀 더 작아지고 그러겠지. 


엽록소도 없고 광합성도 없는 인간에게 이런 햇빛은 뭐랄까. 작아지게 하고, 나의 죄를 생각하게 하고, 아니 생각할 것도 없이 분명히 죄가 있고, 할 수 있는 것은 끝없는 반성 뿐이다. 지나친 더위와 지나친 추위로 매번 사상자를 내는 계절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그 사람 사회의 어디쯤에 걸터 앉아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데. 우리는 지금 여기. 내장산 끄트머리다. 아니 아직 내장산도 도착하지 못함. 물론 내가 조금 더 잘 존재 하려고 차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차 비슷한 것을 탈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나는 알량한 양산을 들고 그 양산도 없는 너는 걷는다. 


탐방 안내소를 가는 길은 2차선 도로가 잘 나있다. 차를 타고 올라가라는 이야기가 되겠지. 도로 옆에는 보도가 있다. 걸어서도 갈 수 있다는 얘기. 다행히도 여기 나무 그늘이 있다. 이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내가 아는 모든 말을 가져와 이야기 하고 싶다. 그 그늘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내장산을 시작도 할 수 없었을 테니까. 가끔 차가 내려왔지만 올라가는 차는 거의 없었고 가끔 내려오는 사람을 보았지만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온종일 둘이서 걸었다. 둘이서 한 얘기는 대체로 이 더위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희안하게 아무리 해도 처음 얘기한 것 같았고,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가 않았다. '더위'라는 말은 굉장한 표현력을 갖고 있었고, 인생을 은유했고, 그 변주가 끊일 수 없었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새로운 표현이 출렁였다. 


조금 더 가서는 완연한 숲, 드디어 내장산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더이상 덥지 않았다. 양산도 없이 산머리를 내놓았던 산은 안엣것들 무사히 그늘로 품고 있었다. 머리위에는 키가큰 나무의 가지가 겹으로 있고 그 가지에는 나뭇잎이 있고, 겹에서 겹으로 햇빛을 떨어뜨린다. 관리가 오래된 표지들이 낡고 있다. 이를테면 '산속의 목소리, 새와 친구가 되어보세요' 여러가지 새를 그려놓고 이들의 새소리를 표기했는데 부서지는 부리의 페인팅, 바래서 사라지는 날개였다. 이 표지는 계속되었다. '산 속의 청소부 버섯' 사람아. 이렇게 더운날 걷는 사람을 생각해보려무나. 


노래를 불렀다. 목이 아니라 배로 부르는 노래, 너는 10년도 더 된 랩을 했다. 우리는 창피도 없이 노래를 목청껏 했다. 내장산에는 사람이 없고 계곡은 말랐다. 몸이 모두 젖을 만한 물은 하류에 몇 곳 있었지만, 더 많은 물, 더 깨끗한 물을 찾기 위해 상류로 상류로 올라갔다. 거기엔 발을 겨우 담글 물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게 정말 차가웠는데, 그 후로 가끔 발목이 차가울 때마다 나는 간지럽고 시원한 그때의 물을 생각하게 된다. 너는 우리가 발을 담궜던 물이 저 아래로 내려갔을까? 라고 은근한 말을 했지만 더위가 몹시한 나머지, 중간에 계곡이 말라있던데. 아마 거기 돌 틈에 있겠지. 라는 데면한 말을 주었다.  


한여름의 내장산은 노래 부르기 좋다. 물론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내장산에 갈 필요는 없지만, 어떤 사정으로 여름 내장산에 가게 된다면 노래라도 부르라는 이야기. 


광주에 가기 위해 케이티엑스를 탔다. 예약한 무궁화호를 취소하면서 두 배 더 비싼 표를 끊었던 것은, 두 세시간을 더 보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별안간 뜻도 없이 내장산에게 혼났던 것 같고 정읍 시내는 콜택시가 아니면 다닐 수도 없는 열기를 뽐내고 있었다. 더이상 정읍을 태연히 마주하고 돌아다닐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예상보다 더 일찍 정읍을 뜨기로 했다. 모든 것은 날씨 탓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게 큰 정읍관광안내소도 우리를 잡을 수는 없었다. 더위를 정읍관광안내소가 어쩔 수 있는게 아니었으니까. 서늘해진 가방을 찾았고, 약간 어색한 뉘앙스의 인사를 받았다. 


그날 정읍의 날씨는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돌아와 며칠간은 '정읍'이라는 비일상적인 단어가 저도 모르게 나올 때 스스로를 매우 놀래켰다. 그래서 우리는 정읍을 이야기 하고 싶다면 그 전에 상대를 위해 간략한 신호를 주기로 했다. 아마도 정읍은 우리에게 새로운 단어로 색인되었는데, 설명한다면 스스로 처하고 발버둥치는 고난,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음 쯤으로 정읍을 풀이할 수 있으리라. 


실은 이런 것 없이 '정읍을 벗어나는데는 17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라고 끝내버리고 싶은 정읍기행 이지만. 


표를 다시 끊으려고 줄을 선 창구에서는 2음절을 넘지 않으며 그것도 예, 아니오로 진화한 매표소 대화의 특성을 무시하고 핑퐁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표를 끊는 순간이 스토리텔링을 갖춰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이야기는 정읍을 넘어 다른 도시를 연결하면서 뻗어나갔다. 표를 끊는 스토리는 저 뒤에 있는 사람도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표를 함께 끊으러 온 부부의 사정과, 이들이 목적하는 곳에 사는 이와, 하루의 저간 사정을 알기에 충분했다. 출발-목적지, 시간으로 갈음되는 표 한장의 얇팍함에 어떤 부피를 주었나. 아들네를 만나러 광양에 가는데○일 가장 빠른 차가 몇 시오? ○시 입니다. 병원에 좀 들리고. 그러면 다음날 광양에서 일로 내려오는 5시 쯤 차는 몇시가 있소? 5시 20분차가 있습니다. 그거 타고 와서 쉬면 되겠네. 그리 주시오. 2인이오. 


도통은 궁금해 할 일이 없는 매표소 앞에서 그것도 한 가지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2개의 창구를 모두 폐한 정읍역의 어떤 마음가짐 앞에서 나는 표를 끊지 못하고 서 있었다. 결국 표는 그 이름처럼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무인창구에서 끊었다. 정읍에 사는 부모의 이야기를 무럭무럭 듣자니, 내가 그 아들네가 되어 광양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는 얼굴이 되는 것 같고, 아니 어쩌면 그 아들이 커다란 짐을 선반에서 내려 저 느리디 느린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는 모양을 보고 있는 부모의 얼굴도 되는 것 같았다. 이곳에 사는 이는 대체로 이런 대화를 기반으로 스토리 넘치는 표를 끊을 것이 차근히, 예상되었다. 표 하나에 추억과 표 하나에 사랑과 표 하나에 쓸쓸함과 표 하나에 동경과... 여기 사람들은 그런것들이 움직여 살아내는 표를 아직 만들 수 있었다.  




※처음 공개합니다.

[내장산 셋리스트]


어떤가요-박화요비

어떤가요 내곁을 떠난 이후로/ 그대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있나요


Better than yesterday-MC스나이퍼

나는 순수혈통 전투민족의 마지막 생존자 100% 고집불통 내 길을 걷는 삶의 개척자 아무리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생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 언제나 자신을 몇 배로 단단히 성장시켜, 자! (Outsider)


헛되었어-MOT

모든게 모든게 부질없어 헛되고 헛되고 헛되었어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 나쁘지 않았어


민물장어의 꿈-우리 동네 음악대장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LOSER-빅뱅

LOSER 외톨이 센 척하는 겁쟁이 못된 양아치 거울 속에 넌 just a LOSER 외톨이 상처뿐인 머저리



생각나면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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