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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말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무수하게 샘솟을 오해를 막기 위하여 선을 긋겠다. '어쩔 수 없었다'는 인간이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만 붙여진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인간-비인간의 맥락에서 뿐이다. 간략한 설명이 온전하길 바라며 다음으로 넘어가자. 세상에는 그런 것이 생각보다 만연한데, 속세의 모서리만을 찧으며 살아온 이들은 그런말을 잘 담으려고 하지 않는다. 끝내는 자신이 경험한 후에야 겸허히 어쩔 수 없음에 대해 한 페이지 길게 쓰게 된다. 그게 

나라니. 나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때, 2만명의 운집 속에 약 49%정도는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질렀다. 51% 사람들은 그 보다 한 박자 늦어서 소리를 질렀고, 그 크기는 제각각이었다. 두 시간 넘었을때 그러니까 공연, 막바지가 다 되었을 무렵 정엽이 말했다. 선글라스 좀 벗어봐. 그러자 나얼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글라스를 벗었다. 이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몇 번이고 지나간다... 강아지 같은 눈이 있었다. 몇 번 깜빡이더니 다시 안경을 썼다. 장내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얼의 행동에는 계산이 없었다. 선글라스는 쓰고 나왔으나, 그것은 언제든지 벗어도 되는 거였다. 아찔한, 순진무구를 읽었으렸다.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는 쉬는 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물음에 '성경 필사'라고 대답했다. 공연 초입 관객과 조금도 호응하지 않는 그의 멘트에서 '노래해야 하는데'로 시작하는 초조함을 느꼈다. 그는 오른쪽이 거의 무너져서 노래 불렀다. 왼쪽이 거추장스러워 보일 정도로 흔들렸으나 노래가 간신히 그를 붙잡고 있었다. 나얼의 왼쪽 얼굴이 잘 보였고, 나얼을 사랑하는 그의 얼굴은 오른쪽이었다. 
 
성훈은 아주 예의 바르게 노래했다. 약간씩 처지는 템포였으나 어떤 가사도 그냥 보내지 않는다는 듯. 하지만 그는 예의 바르고 노래 잘하는 '인간'이었다. 인간은 인간을 알아보지....영준의 입담은 훌륭했다. 그는 목석같은 나얼을 다루며, '2시간을 털었다'고 말하는 성훈의 억울한 대화를 주고 받으며 시간을 이끌었다. 그의 목소리는 잘 퍼졌다. 세 가지 색깔이지만 결국 한 곡으로 모이는 같은 속성의 음정에서 필연적으로 긴장을 푸는 역할이었다. 느슨함을 요구 받았을, 솔로 파트에서조차 솔로로 느껴지지 않는 아름다운 베이스. 정엽이 기타를 메고 나와 부른 퍼포먼스는 발자국마다 완벽했다. 손색없는 그였지만 충분히, 생각보다 더 뒤로 물러나 부르는 노래였다. 나얼은 음반으로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독주였고 독보적이었다. 곡이 그렇게 쓰였다. 의아한 얼굴이 되어 브라운아이드소울을 나얼의 노래, 나얼의 자리, 나얼을 위한, 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러나 이 셋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나얼의 노래, 나얼의 자리, 나얼을 위한. 이라고 적는 다행이 있다.

재능있는 창작자들이 자신이 만든 노래를 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에게 일상의 형태와 그로 있을 미래를 부여하고 있었다. 산업, 말그대로 업을 낳는다. 그들의 발끝까지 거쳤을 손이 몇 개, 그들의 이름이 적힌 포스터-디자인, 홍보, 무대, 무대 위에 있는 다른 뮤지션들, 다시 그들의 가사가 나오는 영상에서부터 이렇게 뛰어다니고 있는 수많은 스텝까지. 2만명의 시간을 한 자리에 묶어두고 저마다 다르게 기억할 추억을 쥐어준다는 것이 경이로왔다. 재능이 있다면, 그걸 잘 쓸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공익'의 성격이 있다. 자신뿐만 아니라 생각할 수 없는 무수한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글이나 연기, 노래, 그림등.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에서 극명하다. 어떤 이의 시간을 바꾼다는 것으로 이미 가치를 말하기 어려운, 가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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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가 넘어서 석이는 5컷 밖에 그리지 못했는데 저녁이 됐어 라고 문자했다. 나는 그 말에 안타까움과 대견함을 함께 본다. 집에 돌아와 오늘 그 '다섯 컷'을 보았다. 이 것에 1시간, 다음 컷에 사십분이 걸렸다는 설명. 너의 시간이 네 만화에 기록된다. 내가 재작년, 시간을 접어 만들었던 별은 기껏해야 나 하나의 시간을 조련한 어여쁜 쓰레기가 될 테지만, 너의 만화는 본 사람들의 생각에 잠기게 된다. 대화로 나올 수 있고, 몇 년이 지나서 불현듯 생각날 수도 있다. 오래된 꿈처럼 기억날 것이다. 나는 그게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윌리엄 예이츠는 선택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삶을 완성할지, 작품을 완성할지 선택해야 한다. 나는 이 말을 석이에게 해주었다. 





*'rapture'는 나얼이 이번 콘서트에서 부르고 싶었던 솔로 노래였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같은 시간 속의 너'를 불렀다.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는 주체로서의 창작자, 가 아니라 나를 떠나버린 작품을 재현하는 이로서 존재했던 섭섭함. 간극은 언제나 있다. '어쨌든'이라는 말로 말미암을 수 없지만, 건강한 갈등이었을 것이고, 그건 앞으로도 어쩔 수 없는 나얼이 지어야 할 고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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