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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우표

_봄밤 2016. 4. 3. 18:25





저는 우표를 소소하게 모으곤 합니다.

'모은다'는 말보다 '소소하다'는 말이 앞에 오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그저 점심을 먹고 시간이 남거나, 그래서 산책하는 길에 우체국이 보이거나 하면 들어갔을 테니까요. 점심시간, 모처럼의 바깥, 산책하는 길의 가지수는 얼마든지 많지 않던가요. 다른 간판에 팔리기 시작하면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지나칠 수 있는 우체국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어쩌다가 들어갔을 우체국이어야 합니다. 우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등기를 부치러 온 사람을 뒤에 두고, 택배를 여러개 부친 사람 뒤에서 빈손으로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혹시 우표를 살 수 있으냐며 묻지 않았겠어요. 우체국 직원은 평편한 비닐 봉투에 담겨진 특별 우표들을 하나 둘 꺼내줍니다. 보통 4종류의 우표가 한 세트로 구성되지요. 그게 여러 개가 있는게 한 판이지요. 그걸 사기에는 우표가 많았고, 다소 비쌌습니다. 그래서 종류로 여러가지를 조금씩 달라고 말하는 것이 구매의 소소함이었습니다. 몇 천원을 넘지 않았겠지요. 그렇게 우표를 고르고 있으면 혹시 이것은 어떠냐며 물어오는 직원이 있기도 했습니다. 대개는 누군가가 샀다가 환불한 우표라는 이야기가 주로였고, 그래서 그 해에 구할 수 없는 우표를 산 일도 몇 번 있습니다. 


그게 얼마나 값어치 있거나 하는 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사는 해에 1998년도에 나온 우표를 만나는 일은 신기한 기쁨이었지요. 가장자리가 작은 구멍으로 꾸려진 시간을 가늠하는 동안 친절한 직원은 앞으로 나올 우표의 일정을 넌지시 알려주기도 합니다. 비치해둔 일람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걸 혹시라도 훑어본 일이 없습니다. 그건 제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지요. 혹시라도 연간 우표의 일정을 기억하거나 그래서 혹시라도 기다리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몇 달에 한 번, 우연이 생각날 때마다 들려 새로나온 우표가 없는지 안부를 묻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실은 우연으로 완성되는 만남은 만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우표를 팔지 않는 우체국도 많기 때문이지요. 물론 규모의 우체국에는 대부분 우표를 비치해두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 이유로 우표 취급을 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지 않은 우체국에도 우표는 있다는 말이지요. 우선은 우표를 파는 우체국을 발견하는 것도 기쁨이었다고 해야 합니다. 우표를 파는 지 미리 얼마든지 알 수도 있을테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작은 시간이나마 마음껏 쓰는 작은 자유에 있었을 것 같지요. 저는 모월 모일 발행되는 우표를 꼭 모아야할 이유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표를 살 수 있었다면 기뻤겠지만 그렇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음에 만나면 되었을 테니까요. 그건 제가 갖고 있는 시간에 대한 자신감이기도 했습니다. 우표가 아직 사라질 일 없다는 믿음이기도 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인터넷에서 너무나도 쉽게 희귀한 우표를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니,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는 그냥 제게 흘러들어오는 우표를 기다렸기 때문에 찾지 않았던거라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이 인터넷 창으로 보이는 우표는 제가 서른 일곱의 우연을 기다려도 찾을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만원어치의 우표를 담아두고 고민합니다. 저는 이 우표를 사게 될까요? 제가 애초에 우표를 사면서 만났던 즐거움은 뭐였을까요. 성운 우표라니, 이 우표는 거리의 우체국에서 만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고나면 생각날 때마다 들려서 소소히 모으던 우표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도 맞습니다. 손쉽게, 이 우표들을 만나게 될 때, 제가 몰랐던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몇 번의 식이 끝나고 나면 언젠가는 만나지 못하게 될 거라는 것을요. 여남은 친구의 수를 세어봅니다. 그 몇개 되지 않는 숫자를 늘어 놓으며 '아직'과 '적어도'를 쓸어내리고 웃습니다그건 우연이었지만꼭 만날 수 밖에 없는 자리였겠지요. 실은 몇 번은 연락하고 싶었습니다하지만 하지 않았습니다그것으로 몇 해가 지나갔겠지요가끔 오는 전화를 부러 받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그저 제가 그 연락에 없었기 때문이지요다시 전화를 걸어도 되었겠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어딘가에서 분명히 저녁을 만들고 있으리라는 확신이었습니다거기에 내가 꼭 있을 필요는 없지요

 

전에 우표 사는 것을 즐겁게 바라봐 준 친구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는 내가 그 작은 것을 지갑에 넣어 다니는 걸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지갑이라는 것이 존재했을 때, 칸칸히 수납을 구비했던 때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았을 때, 한 시간이 넘는 출근 길을 유유히, 운전하며 다니던 때에. 그때에 제겐 지갑이 있었습니다. 그 지갑에는 돈 이외에도 우표 너 덧장을 늘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중요한 연락을 염두해 두었던 것 같습니다. 우표는 그럴 수 있는 가장 최종의 방법이니까요. 목소리나 손짓으로는 소용없으며 이렇게 빠른 핸드폰, 문자와 이메일에도 불구하고, 편지만의 무게로 전해야 할 무엇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처음 썼던 유서는 열아홉 살 때 무렵이었습니다. 쓸 때는 호기로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걸 마주하는게 뜨끔하여 잘 열어보지를 않았습니다. 이후로 십년을 더해서 써야겠다는 생각만 해두었지요. 그것의 봉투에는 수신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남기는 편지였으므로 그때의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잘 보였습니다. 쓰면 쓸수록 명확해지는 이름을, 여러번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때의 이름을 10년 뒤에도 지키고 있었을까요? 얼마나 새로운 이름을 써내려 갈 수 있었을까요. 여기까지 썼을 때, 지워지는 이름과 떠오르는 얼굴이 교차합니다. 막무가내로 지났던 이십대는 유서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날들에, 처음으로 썼던 유서에는 우표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오는 신촌을 걷는게 즐거웠습니다. 도착할 필요도 없고, 도착도 필요없이 헤맸습니다. 서로의 시간을 오랜만에 한 곳에 두느라 정처가 따로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고, 무엇이 되어야 할지 모르는 여전히 어리석은 날들에 있었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새삼스러워진 사이에 이제 내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겠습니다. 간신히 부칠 수 있는 것은 도착을 유예하며 마지막으로 자꾸 건너가는 몇 개의 이름뿐이겠지요. 부른다고 마주하거나 대답을 주저했던 등과, 부르지 않았음에도 괜히 뒤를 돌아보는 얼굴 같은 거라고 다시 말해도 좋겠지요. 우표를 오랜만에 샀습니다. 내 목소리에서 불리지 않는 이름을 오래 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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