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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만두 빚은 얘기

_봄밤 2016. 2. 20. 16:29





1.

주방 문은 미닫이로 호리호리한 검은색 철제다시간이 지나 어쩐지 둔탁해지는 나무 문과는 다르게 언제나 단단한 외양이다어쩌면 시간에 지쳐도 내색을 잘 감추는 어머니 같다. 이 문은 예외 없이 늘 열려 있는데, 미닫이창의 속성상 반을 닫고 반을 열어놓는 탓이다현관을 들어서면 시야 일직선으로 이 미닫이문이 닿는다반쯤 닫혀 주방의 안쪽을 쉽게 볼 수 없는 대신주방으로 공간 열려있음을 알려주어 집 안의 답답함이 없도록 하는 장치였다이 문틈에 먼지가 없는 것이 어머니의 생활이었다말하지는 않았지만 이 깨끗한 문틈이 좋았고여쭙지 않아도 어머니의 여전함을 확인할 수 있는은근한 기쁨이었다.


주방에 싱크대는 ㄱ자인데 쓰임은 자에 가깝다길게 뻗은 싱크대는 얼마 전 바꾸어 하얀 대리석 장식이 빛난다그리고 서 계신 어머니의 뒷모습비로소 주방이 살아나는 모습이다싱크대 건너편 벽 쪽에는 이십몇 년이 훌쩍 넘은 장식장이 있다외관은 물론 나무로 된 것이지만 유리 간이 있어 실루엣이 어른어른하는 거였다어머니가 항상 비치던 창이다누구보다 어머니 뒷모습을 보고 있었을 장식장언젠가 그 창을 돌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아픈 웃음이 돈다미닫이 문틈을 건너 주방으로 갈 때면나는 어머니의 공간으로 가는 것이다.


2.

올해 설날 어머니는 점점 더 작아지셔서 만두소를 만들고 계셨다당면을 찌고 부두를 으깨고 부추를 썰고 고기를... 그것은 너무나 큰 양푼으로 가득이었다언제까지 만두를 빚을 수 있을 만큼 많았고만두피는 따뜻한 바닥에서 노골노골해지고 있다매해 힘에 부쳐 만두를 그만 빚어야겠다고 하시면서도딸네들이 만두 빚냐며 기대로 내려오면그 재미있는 공작을 시켜주기 위해 나이 든 어머니는 소를 반나절 준비하시는 거였다아버지는 언제나 주방에서 제외되었는데대신 주방을 가능하게 하는 일에서는 언제나 포함이었다무를 뽑아오거나 호박을 따오라거나불을 때라는 어머니의 준엄함에서는 한 시도 늦장을 부릴 수 없는 것이다그래도 다분히 가부장적인 곳에는 틀림없다주방일을 거의 하지 않는 아버지그것을 보고 자란 나는그러나 아버지를 언제든지 으름 잡는 딸년으로 컸으며 석이는 딸네와 비교할 수 없이 집안일을 솔선수범하는 아들로 자랐다.


3.

어머니는 우리를 한 곳에 둘 장소가 필요하다오전에는 전이었고오후에는 마늘이었고이제는 만두다준비된 양푼은 두 개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나를 위해 소고기로 만두소를 준비하는 두 배의 수고를 하신다이 초대에 기쁘게 응하는 것이 설날의 됨됨이라만두피가 적당히 말랑말랑해질 때 이음매를 단단히 할 따뜻한 물을 준비하고이 만두소를 다 쓸 때까지의 이야기 올리는 것으로 만두 빚기는 시작한다그것은 우선 만두 자체로 입을 뗀다같은 만두피와 만두소숟가락으로 빚지마는 모양이 제각각인 것이 웃음인 것이다둘째는 만두를 저만치 작게 만들고 있다나는 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게 속을 처넣고 있다어머니는 중도다연륜은 언제나 피가 적당히 받아들일 소를 넣을 줄 안다어머니는 둘째의 만두를 먹음직스럽지 않다고 이야기하며조금 더 욕심내서 속을 채우라고 넌 시지 건넨다맛있기는 내 것이 맛있겠다라고 하는 말에서 나는 더 기뻐져 더 이상 ''일 수 없을 정도로 속을 넣는다꼼꼼히 만두를 여물 때손끝으로 누르는 한 땀 한 땀마다 이렇게 커버린 내, 눈이 머문다.


만두 소는 어머니가 준비하시고 만두 피는 슈퍼에서 사 왔는데,이 두 개를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가늠한 데서도 올해는 만두피가 모자랐다만두는 오늘 다 빚어야 하고만두피가 모자라니 피를 더 사 오는 수밖에.아버지 차례인 것이다음식을 다 못 만들게 생겼으니 주방이 아니다만두피 좀 사 오는 것이 어떻소라고 어머니가 미닫이 건너편에서 거실로 이야기를 하니둘째가 만드는 것과 첫째가 만드는 게 어쩜 이렇게 다른가 하며 감상에 젖었던 아버지는 갑자기 버럭 하신다..

그 요는어떻게 창피하게 만두피를 사러 가느냐는 것이다모녀는 그것이 너무나 우스워 되묻는다.


4.

-아버지만두피를 사는 게 어찌 창피하소아버지는 대답하신다.

-아니 만두피만만두피 그 많아야 두 봉지 살 것 아니냐두 봉지를 덜렁덜렁하고 오는 게 얼마나 창피하냔 말이여처음에 살 때 딱 맞게 사놓았으며 좋았을 걸 이 어떻게 창피하게 그런단 말이냐나는 만두만큼 크게 웃는다. -아버지그러면 안 창피하게 잘 사 와 보소.몰래 사오시든지.


웃음이 도돌이표처럼 어머니에서 둘째로둘째에서 나에게로 이어진다세상에 만두피를 사는 게 창피하다니하면서그러면서 어머니는 말미에 못을 박는다만두를 못 만들게 생겼으니 좀 다녀오시구려.아버지는 만두를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가신다이윽고 차 소리가 들리고어머니 물으신다내 생각에 아버지가 만두피를 사러간 것 같은데니들 생각은 어떠냐우리는 모두 그렇다고 했다저리 말씀하셔도 만두피를 최대한 덜 창피하게 사 오는 거 아닐까요?


5.

한참을 웃으며 만두 한 냄비가 다 쪄질 무렵 아버지는 돌아오셨다아버지보다 화가 먼저 현관을 들어선다주변 큰 슈퍼를 세 군데나 갔는데 이놈의 만두피가 다들 없다하시면서만두피가 없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고요새 만두 빚는 집이 없긴 없구나딴청을 피운다.아버지는 심지어 한 가게에서는 냉동창고까지 갔다 왔는데도 없다고 하신다되었으니아버지설 지나고 만두피를 다시 사 오는 것으로 이날 만두 빚기를 마무리했다피가 하늘하늘 잘 읽어 안쪽이 보이는 만두로 이 날 저녁을 차렸다만들 때와 달리 속이 적게 들어가 볼품없어 보였던 둘째의 만두는 피가 적당히 쪼그라들면 수축해 맛있는 만두가 되었다더 어쩔 수 없이 속을 채워 넣던 내 만두는 숨을 토한 것처럼 잔뜩 퍼져서 먹기 어려운 것이 되어 있었다만두로서의 욕심은 이뤘지만먹는 이를 헤아리지 않는 결과였다그러나 만두는 돼지 만두가 맛있고이 집에서 소고기 만두는 나만 먹는데나는 소고기 만두만 빚었으므로 그 탐나는 퉁퉁 함은 모두 내 것이 되었다퍼진 만두를 몇 입에 걸쳐 먹으면서그래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빼놓지는 않는다.


6.

만두피 사러 가는 걸 창피하는 아버지를 소재로 한바닥을 쓰는 나는 그 만두를 닮았다말하자면 내가 가득 처넣어 만든 만두처럼 재미있는 쓰기였지만읽는 이에겐 어떨지 모르겠다는 말이다나중의 나는 읽으면서 그래도 우겨먹었던 만두처럼 슬프게 '맛있다할 것이지만명절이 지나고 어머니의 일상을 생각하니 자연 주방의 미닫이문이 떠오른다깨끗한 문틈안전한 어머니의 장소언제든지 넘어오라는 문턱 낮은 환대의 장소우리에게 대충하는 한 끼가 없었듯이 스스로에게 차리는 한 상 역시 정성이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적으려는데 화가 난다대체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인가내가 그 만두 '맛있다'한 의 말미와 이렇게 닮은 슬픈 꼴이니. 만두 끝을 꼬매던 것처럼 그저 여며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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