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풍경의 맛

마늘 깐 얘기

_봄밤 2016. 2. 8. 23:48




1. 

만두를 빚기 전이고 마늘을 한 접 깐 후다. 


2. 

단독 주택인 고향집은 웃풍이 심하지만 그 못지 않게 햇빛이 많이 들어온다. 우선 거실에 아주 큰 창이 있어 하루종일 해가 머문다. 여기가 남향이다. 동향인 안방에는 아침이 대단하게 온다. 이렇게까지 빛이 들어올 게 있나 싶을 정도로 눈이 부신 것. 안방 건너편으로 방이 두 개 있다. 각각 남향과 서향이지만은 둘다 서향에 가까운 빛이고 그 방은 차분하다. 부엌과 욕실이 북향으로 배치를 이뤄 단촐하지만 집에는 해가 사방을 돌아나간다. 이런 집에서 스무해를 보냈다. 이러니 이틀이고 사흘이고 고향에서 잘 때면 보통 한 방향만을 선택할 수 있는 '방'에 들어사는 도시에서의 살림이 새삼스럽게 마땋찮다. 벽을 끼고 있어야 할 방향에 창을 내 덥고 추운데서 지내는 지금 '방'의 실상이 그러한 것. 그러하니 자랑처럼 어제 아침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기러기떼가 날아가는 소리로 깼다. 대열이 보일 듯 세찼고 그 수가 많았다. 아침 뿐인가, 밤은 깜깜하고 맑아 별자리가 잘 보인다. 이게 무엇 저게 무엇하며 가르칠 수 있을 정도다. 괜히 좋았다. 내 유년은 이 모든 것을 수시로, 아주 자연스럽게 얻었었다.


3. 

점심 상을 치우고 하우스에서 마늘을 깠다. 가지에 열린다, 뿌리에 열린다, 복잡스러운 것들이 가득했던 한 해를 치우고도 하우스는 겨울 해를 채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따뜻한 공기가 있어 대수로운 일을 하기 좋았다. 황토밭에 덩그러니 앉아 동생과 나는 말이 별로 없다. 한 접이라고 해서 꽤 많은 줄 알았으나 그것은 일이 지루할 때끔 끝나가는 양이었다. 나는 마늘 뿌리를 다듬고 그것을 서너쪽으로 갈라 동생에게 준다. 동생은 애벌로 다듬어진 마늘을 하나씩 까는데. 마늘에 비늘처럼 붙는 껍질을 상처없이 까느라 작은 손이 눈에 띄게 느리다. 가끔 아버지가 오셔서 거두셨다. 동생 손이 느린 것을 타박하면서, 마늘 까는 것으로 생활을 걱정하는 천리안을 시름하시면서. 까실한 얼굴에 눈가 주름이 깊다. 그걸 말하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여전히 잘생기셨다. 그 역시 말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손이 느린 동생을 걱정하고 또 칼을 쥐고서는 맨손이라 장갑을 가져다 주셨지만 동생 손이 아주 작아서 일에 방해가 될 뿐이다. 개켜져 일하는 사람 옆에 하릴 없는 장갑이라. 나는 아이를 낳아 키우고 마침내 사람만치 컸을 땐 실상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나는 어떤가. 나는 제법 빨리 마늘을 다듬는 편이었다. 그러나 깨끗하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늘 머리마다 억세고 연한 데가 있어 칼집이 마음대로 들어갔고, 마늘 머리가 층을 지게 되었다. 후에 어머니는 그것을 보시고 너는 심성이 비뚤졌다,고 이만치 나를 내다보셨다. 자세히 말은 하지 않았지마는 일이 그렇게 된 것을 어머니 모를리 없을 것이고, 좀 더 힘을 주어서 다듬었더라면 머리는 평평했을 것이다. 마늘 하나에도 생활과 마음이 깃들고 넉넉히 그것을 들키는 오후다. 역시 부모야만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리고 나는 지금 이런 시름과 걱정이 아무 상관없어지는, 으깨어지는 마늘을 내려다 보고 있다. 마늘을 한 접 깠고, 반 접 찧었다. 


4. 

그 하우스에서 딸들과 십 분 이상의 대화를 불편히 여기는 아빠가 잠깐씩 엉덩이를 붙일 때마다 나는 내년의 다짐같은 것을 물어봤다. 나아가 내년에는 어떤 작물을 심으실지 계획 같은 것도 여쭙는다. 고향에 내려와봐야 딸들에게는 이런 일만 맡기는 부모님 덕분에, 나이가 이만치 차도 작물의 이름과 생태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등의 쓸모없는 물음뿐이다. 내년의 다짐을 여쭈면 '풍년이지'가 대답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내년은 어떤 작물을 심으실 것인지, '작년과 같다'라는 대답이다. 작년을 알지 못하므로, 올해도 알 수가 없다. 작년 가을 석이를 무던히 괴롭혔던 '무'를 여쭈니, 무에 대한 자부심으로 올해도 당연히 하신다는 답이다. 작년 무농사는 우리집만 잘 되었다는 통계와 확신. 작년 벼농사는 '우리집만큼 못한 집이 없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해 올해 벼농사 종자는 어떻게 고를 것인지 한 번 더 여쭙는다. 그렇게 안되는 종자만 고르셨다던디....아버지는 호쾌하게 웃으시면서 그래도 보통은 했다는 말씀으로 작년의 씁쓸함을 가리신다. 어쨌든 잘하겠다는 다짐을 듣는 것으로 아버지와의 대화를 끌었다.


5.

아버지는 말씀이 별로 없다. 정작 묻고 싶은 것에는 대답이 션찮을 것이 분명하기에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키워놨으니 이제 결혼시켜야 할 텐데 도무지 기미가 없다. 하기사 딸에게 결혼이고 만나는 사람이고를 묻는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셋이 모처럼 마늘로 가둬진 시간에 아버지는 '이 노랗게 된 마늘이 상한 것인지 언 것인지'를 물으신다. 그것을 나라고 알 턱이 없으므로 얼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면 요새가 좀 추웠으므로 마늘이 추웠던 것 같다, 는 대화다. 문제는 얼었던 마늘을 먹을 수 있느냐 문제였지만, 그것은 여기서 풀릴 수 없을 것 같다. 겨울이 추워서 마늘이 어쩌지 못했다, 로 대화는 말미를 이루고, 어쨌든 다 까서 스뎅 그릇에 담아두었다. 네시가 넘자 급격히 해가 줄었고 등이 쌀쌀했다. 아버지는 마늘 뿌리와 거플을 자신에게 맡기시고 우리를 집으로 몬다. 마늘이 늦어졌으므로 만두가 늦어졌다.


6.

일하매 텅빈 하우스를 둘러봤다. 그중 불투명한 비닐 너머로 연산홍 무리가 보였다. 지금이야 가지밖에는 없지만 매해 꽃을 얼마나 진하게 떨어뜨리는지 모른다. 그 속에서 어머니가 사진을 찍고 하셨다. 그런데 그 가지가 조금씩 움직이는게 아닌가. 조금 더 지켜보니 '참새 같다'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조막만한 새들이 가지를 넘나들며 작은 조동아리로 분주히 놀리고 있었다. 고개를 잠시만 두어도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다시 기쁘다. 다리 건너로 아파트 단지가 있는 걸 모른체하면, 아직까지 이 동네에는 야트막한 산보다 높은 건물이 없고 길에 나와 한참을 서성여도 아무도 만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만나는 것이다. 어린 내가 길가로 내달려오는 순간을. 저기에 우리 같이 누워서 별을 봤던 저녁을. 그만치 어렸던 나와, 내 동생들과, 그리고 한결 젊으셨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7. 

쓰자니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다. 졸리니깐 우선 이만치로 한다. 다음은 만두 빚은 얘기다. 





'풍경의 맛'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브라운 아이드 소울 발렌타인데이  (0) 2016.02.15
진짜잖아요 - 무뢰한  (2) 2016.02.10
펜벗  (2) 2016.02.05
연휴 전날  (0) 2016.02.05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0) 2016.01.1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