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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동안 에밀리 양은 하나의 전통이자 의무이며 관심의 대상이었다. 즉 마을에 세습되는 일종의 책임이었다. 흑인 여성은 앞치마를 두르지 않고는 거리를 다닐 수 없다는 법령을 시행한 바 있던 시장 사토리스 대령이 1984년 그녀의 부친이 사망한 날, 지금부터 그녀의 세금을 영구적으로 면제하겠다고 하면서부터. 에밀리 양이 그런 혜택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까 봐, 사토리스 대령은 그녀의 부친이 시 정부에 돈을 빌려 주었기에 시 입장에서는 그렇게라도 상환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냈었다. 딱 대령 세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만이 지어낼 수 있고, 딱 한 여자만 믿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p. 8.


그녀의 얼굴은 고인 물속에 오랫동안 잠겨 있었던 시체처럼 퉁퉁 불어 있었고, 파리한 안색 역시 시체를 연상시켰다. 퉁퉁 불은 얼굴에 감추어진 그녀의 두 눈은 손님들이 용건을 말하는 동안 그들의 얼굴을 일일이 살피고 있었는데, 마치 반죽 덩어리 속에 박힌 두 개의 조그만 석탄 쪼가리 같았다. p. 9.


그들은 마을 청년들 중에는 에밀리 양의 배필로 적합한 사람은 없다는 듯 굴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그 가문을 다음과 같은 하나의 풍경으로 여겼다. 뒤쪽에는 하얀 옷을 입은 가냘픈 에밀리 양이 서 있고, 앞쪽에는 그녀의 부친이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 말채찍을 들고 두 다리를 벌린 실루엣으로 서 있는 풍경으로. 활짝 열린 현관문이 그 두 사람의 모습을 가두는 액자였다. 그녀가 서른이 되어도 여전히 독신으로 머물러 있자, 우리는 기쁨까지는 아니지만 우리의 예상대로 되었다는 기분을 느꼈다. p. 12.


그녀의 부친이 세상을 떠난 날, 저택만이 그녀에게 남겨진 전부라는 얘기가 돌았다. 어떤 점에서 위는 반가웠다. 마침내 에밀리 양을 연민 할 수 있어서였다. 그리고 빈털터리 신세로 홀로 남겨졌으니 그녀도 이제 인간다운 모습을 보일 거라고, 비로소 동전 한 푼에 울고 웃는 인간의 그 유서 깊은 전율과 절망을 배우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p. 13.


우리가 에밀리 양을 다시 보았을 때, 그녀는 몸집이 불고 머리칼이 희어지고 있었다. 그다음 몇 년에 걸쳐 그것은 점점 더 희어지더니, 진행이 멈추었을 때는 후추와 소금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철회색을 띠고 있었다. 일흔 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의 머리칼은 활동적인 남성의 그것 같은 강인한 철회색을 그대로 유지했다. p. 18.


마치 벽감에 놓인 조상처럼 앉아 있는 그녀가 과연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갔다. 피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며, 무엇에도 영향받지 않고, 고요하고, 괴팍하게. p. 19.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


윌리엄 포크너, 『세계문학 단편선 02 윌리엄 포크너』, 현대문학. 2014.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한 묘사로 사람을 그리는 솜씨. 곳곳에 숨어 있는 위트도 일급.


'딱 대령 세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만이 지어낼 수 있고, 딱 한 여자만 믿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반죽 덩어리 속에 박힌 두 개의 조그만 석탄 쪼가리'

'활짝 열린 현관문이 그 두 사람의 모습을 가두는 액자였다.'

'비로소 동전 한 푼에 울고 웃는 인간의 그 유서 깊은 전율과 절망을 배우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머리칼은 활동적인 남성의 그것 같은 강인한 철회색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렇게 그녀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갔다.' 


미친 글쓰기다. 읽히기는 또 얼마나 안읽히는지 문장이 길고 어렵고 의미는 빙빙 돌아서 두 번씩은 읽어야 한다. 읽고 나서는 진부하게도 '혀를 내두르'게 된다. 좀 참신한 묘사 없을까. 읽고 나서 '욕을 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윌리엄 포크너와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겁나 쫄게 하는 글쓰기라고. 감히 읽을수도 없게 하는 글이라고.


리뷰도 좋다. 작품이 있던 시대를 이해하고 그것을 지금으로 끌어오는 시도는 가만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http://weekly.changbi.com/?p=5543&ca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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