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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

아침이 긴 나라

_봄밤 2014. 12. 19. 01:23






달을 보는 사람들이 달의 분화구에 마음 두지 않는 것을 본받아 카드를 샀다. 아름다운 말밖에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축복을, 폭격을 맞은 듯한 흔적은 모른척 가며 건네려고. 그런 폐허가 언제 생겼는지 왜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은 채.


그치만 그곳은 너무 춥지 않은가요. 눕기에 너무 낮은 곳은 아닌가요. 그런 말을 속으로 숨기면서 걸었다. 숨겨지지 않는 걸음이 천둥처럼 울릴 지하도로 바닥에 이른 잠에 든 사람 옆을. 뱀처럼 한 줄로 길게 늘어져 있는 검은 파카들.


아침이 긴 나라에 가고 싶다. 나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도 않다. 아주 소수의 사람, 아주 소수의 얼굴을 만지며 살고 싶다. 아니 그 소수는 때로 한 사람에 못 미친다는 걸 알고 있다. 하나의 얼굴이 되지 않는 사람들.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표정들 그러나 나 또한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조각이다. 황아에게는 그냥 한 마리의 황아가 더 필요할 뿐인데. 


소에 칼집을 넣으며 울룩한 근육, 그것과 제 팔뚝을 동시에 살필 형이 생각난다. 

가끔 붕대 감았던 손에 아직도 담배를 끼고 있는지. 그곳의 새해는 어떻게 내쳐 달려 오는지. 여전히 그런 웃음일 것인지. 그때 우리가 파낸 흙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때 맞췄던 토기는, 여름은 물 웅덩이마다 고이던 장구벌레의 움직임은, 서늘하게 뒤따라오던 소나기의 오소소함들은. 그때 내가 버렸던 필름의 누런 종이 팩은, 정사각형의 엠피쓰리에서 흘러나오던 느린 노래들은, 가끔씩 편지를 부친다며 이른 점심을 물리고 나가던 기쁜 얼굴은. 밤잠 설치며 전화를 받았던 애인과의 통화는. 다시 펴보지 않을 수천장의 슬라이드를 정리하던 젊은 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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