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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드는 악기의 고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했다. 헐벗은 연주. 악기가 미혹시킨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장식적인 기능을 삭제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바흐의 장식음들을 그는 마치 장식음이 아닌, 악절의 다른 음들과 똑같은 멜로디와 화음의 가치를 지닌 음들처럼 연주한다. 이들의 필연성과 절박함을 발견하기 위해서인양, 분해되어 나온 뚜렷한 음들로 천천히 연주한다. 그러므로 페달이 사용되지 않는다. 페달은 옷을 입히고 가리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의 몸이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를 원했다. 우리의 몸이 인위적인 장식들을 박탈당한 채 벌거숭이가 되어, 살더미의 치욕 속에 버려져 죽음으로 가듯이.







미셸 슈나이더, 이창실, 『글렌 굴드-피아노 솔로』, 2002,  p. 102,




왜 굴드를 샀는가. 아_오 동문선, 하면서도 책을 들었다. 내가 글렌 굴드나, 피아노 솔로나, 바흐를 알고 있나. 아무것도 모른다. 글렌 굴드의 음악에 대해 쓴 한 줄을 (정말 한 줄 뿐이다!) 예전에 본 적 있을 뿐이다. 그걸 기억하고, 기억이 또 기억을 해서 이제 굴드는 아는 사람이 되었다. 오, 글레 굴드씨! 만나고 싶었습니다.


어젯밤 드러누워 뉴스를 들었다. <가려울 때 긁으면 왜 시원하다가 더 가려운 것일까요> 하는 문제를 밝혔다고 했다. 겨울이어서 각질이, 간지러움이, 온통 기억을 내세우며 초미의 집중을 하는 여자들에게 이어지는 아나운서의 말은 침소리마저 잦아들게 하는데. <가려울 때 긁으면 더 가렵게 하는 !@#$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가려울 때는 긁지 않고 참는 것이 최선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라니? 작은 탄식이 연탄으로 쏟아졌다. 


연구라는 것이 이토록 허탈한 결과를 냈다. 그것이 밝혀진 것은 2014년 11월의 어느 날이다. 그러니까 어떤 연구자 한 사람의 '어느 때'가 이 간명한 '진실'에 이른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2014년 11월의 어느 날 이 허망한 이야기에 닿았다. 는 것이다. 이 진실에 도달해 버린 한 사람으로써, 탄식을 또 얹기엔 너무하는 것 같으니 울상을 풀기로 한다. '푸핫' 우스워서 그런거 아닙니다. 긍정합니다. 뭐 저런 당연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차트를 기록하고 잠을 쫓고 라텍스 장갑을 버렸다고, 아깝겠습니까. 지난 날이 하찮은 일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가려움의 이유가 외계에서 온 자장에 의한 마찰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더라도, 무슨, 중대한 문제라도 되었겠습니까. 아니 그 정도면 중대한 일이 되었겠네요. 하지만 이 연구결과는 결국 개인 스스로의 행동을 조절하는 데 승패가 있단걸 밝혀낸 셈입니다. 그러니까 외계의 자장에 의한 마찰을 물리치는 무엇을 만들어 내는 초인적인 기술에 의지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기를 물리칠 수 있는 겁니다. 가려울 떄는 손을 멀리하세요. 당신만이 당신의 가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 인위적인 장식들을 박탈당한 채 벌거숭이가 되어, 살더미의 치욕 속에 버려져 죽음으로 가는 것이라고 느껴도*.




*미셸 슈나이더, 이창실, 『글렌 굴드-피아노 솔로』, 2002,  p. 102,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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