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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

이제와 같이

_봄밤 2014. 12. 27. 15:36





며칠 전 책을 받았다.

면지에 내 이름이 크게 쓰여져 있었다. 이름 앞에는 '하나뿐인'이라는 글자가 있다. 나는 '하나'라는 말은 물론 '뿐이다'라는 말도 알지만 '하나뿐이다'라는 말은 처음 본 것 같았다. 눈이 커졌다. 다시 펴 봐도 그대로인 '하나뿐인 봄밤'에게. 웃음 사이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누구도 이 말을 뺏아갈 수 없다. 어디에서 잃어버릴 수도 없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말을 받았다. 이럴때면 영원히. 

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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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냐는 문자가 왔다. 물으나마나 한 그런 말들에게, 잘 지낸다고 대답했다. 똑같은 말을 묻는다. 잘 지내느냐고, 역시 같은 말이 돌아온다. 그리고 잠시 후. 일을 하냐고 묻길래, 이상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이상한 회사에 다니면 그런 말 하지 않더라. 


나와 그가 그리는 원이 완전히 서로를 벗어난 이후로 그 원은 서로 만날일 없이 우주를 떠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늦었지만 축하해. 잘 되었구나' 하는 자신의 안심과 스스로 '이상한 회사'라고 낮추는 나의 말을 따뜻하게 돌려주었다. 



나는 이렇게 작고 기쁜 일을 적으며 오후를 보낸다. 설거지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박물관에 가겠다고 생각했다. 한시간이 좀 못되게 걸린다. 멀다. 멀고 춥다. 내가 가면 그이들이 있을 것이다. 자리를 잃어버리고 적당한 조명과 습도, 그리고 걸음으로 익숙해진 물건들이. 보고싶지만 금새 보고싶지 않아진다그들에게 마음을 많이 주고싶지 않다. 더 보고싶은 것이 있다. 흙속에 묻혀 있는 것들.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빛을 보기까지 저의 균열을 지킨 물건들에게 다정하고 싶다. 견딜 수 없어서 어깨나 입술이 부서져 내렸어도 놀라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지 묻지 않는다. 무엇을 참을 수 없었는지, 혹은 스스로를 흙속에 다 갈아버리지 않을 수 있었는지 조용히 생각한다. 몸을 조심스럽게 씻긴다. 부서진 몸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그랬다는 얼굴을 전사할 뿐이다. 


색이 다양하게 들어간 적당한 두께의 무가지를 구하고 싶다. 종이접기를 다시 시작했다. 시간을 접고 이어 붙인다. 모두 나의 시간이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시간이 이곳에 들어간다. 내가 어떤 이도 만나지 않은 시간이고, 내가 다른 곳에 조금도 있지 않았던 시간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은 무엇에도 효용이 없는-먼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쌓을 수 있는 여러 각의 종이별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려고 했던 기다림을 한 눈에 알아본다. 먼지가 어떻게 쌓이는지 관찰하며 소중하게 간직해 줄 것이다. 


빚을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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