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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

'아직' 내것이 아닌 위로-엔진

_봄밤 2014. 12. 28. 14:14




엔진




이근화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피를 흘리고

귀여워지려고 해

최대한 귀엽고

무능력해지려고 해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지 않고

달려보려고 해

연통처럼 굴뚝처럼

늘어나는 감정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울어보려고 해

우리는 젖은 얼굴을 

찰싹 때리며

강해지려고 해




이근화, 『우리들의 진화』, 문학과지성사.





'살아남다'를 부를 수 있는 형용사는 어떤 순간에도 하나뿐이다. 이 시는 그것을 찾았다. '최대한'이라는 말. 그러나 언어의 끝을 알지 못하면서 그와 호응할 수 있는 말이 단 하나밖에 없다는 확신이 어떻게 가능할까. 당신의 하루를 살피면 알게된다. '최대한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고 월요일 새벽같은 기상과 구둣발 빗발치는 환승역에서의 기다림, 식재료의 날짜를 살피고 가장 싱싱한 고등어와 무를 고르는 마음이 왜 필요한지. 

 

살아남기 위한 '최대치'를 알려줄게그럴 수 있는 방법을 적어볼게세상과 결을 맞추거나 함께 갈 수 있는 일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무능한 시집이 첫 번째로 내건 포부다어떤 이에 초점을 맞춰 적을 것인가. 습지의 도마뱀, 오십대 가장과 일곱살 여자아이의 사는 방법은 모두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런거라면 걱정하지말고 읽으렴. 피를 흘리고, 귀여워지고 무능력해지며 울어보는 것. 과연, 누구를 위해 썼는지 알지 못해도 누구나가 끄덕일만한 지침인 듯 하다.

 

그러나 미쳐 읽고 내려오지 못한 제목은 '엔진'이다. '우리'의 자리에 습지의 도마뱀과 오십대의 가장, 일곱살의 여자아이를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피부와 온기가 없는 엔진을 가르킨다. 그러나 이미, '살아남기 위해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지 않고/ 달려보려고'하는 '엔진'의 마음이 되버린 당신이다. 금새 표정을 고치며 당신은 너무 많은 위로가 내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 같다. 나의 삶은 '아직' 엔진의 그것처럼 피를 흘리거나 귀여워지고 무능력해질 필요는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느 날 당신은 손을 씻거나 세수를 마치고 별 이유도 없이 젖은 얼굴을 몇 차례 때린다. 거울에 비치는 두 번의 아픔에 차라리 '엔진'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할 것 같다. 나는 엔진이 아니지만, 차가운 금속은 '아직' 아니지만. 너의 살아남기 위한 최대한의 방법을 배우고 싶구나 '연통처럼 굴뚝처럼/ 늘어나는 감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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