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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2014

10월의 소설

_봄밤 2014. 11. 3. 22:22

알라딘 신간평가단

돌베개

그리고 돌베개

다섯 권의 책


가장 오래 본

그리고 오래 볼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창비/2014

 

고래를 읽지 않고 천명관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그러니

손목은 다 푸셨나, 정도의 느낌만 적는 밖에. 이제 진짜 뭐가 나올 것 같은데 끝난다.




제르미날 1,2 

에밀 루소/문학동네/2014

 

읽기는 1권 107쪽에서 끝난다. (실제로는 1권만 464쪽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70쪽까지 내달렸던 것을 생각한다. 읽을 마음이 사라진 소설을 70쪽을 더 밀고 나갔던 힘에 대하여. 70쪽 더 힘내서 읽었던 이유에 대하여. 107쪽 주석은 이후로 장장 너덧시간은 족히 헤맬 시간을 아껴주었다. 그게 없었더라면 그날 한 권을 다 읽고 2권도 읽었을테니까. 겨우 이백쪽 읽고 그 삶의 괴로움을 몸으로 느낄 것 같다. 기침을 하면 숯가루가 나오고 목욕통에 시커먼 물이 내 밑에 비치는 듯해. 이 괴로운 장면들을 끝장 내버린 107쪽 문제의 주석은 


2권 통째와 이야기의 줄기를 분질러 버린다. 옮긴이가 얼마나 이 소설을 중하디 중하게 감쌌는지 알 대목이다. 옮긴이는 아낀 나머지 소설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독자를 믿지 못한 까닭이다. 못 알아 볼까봐. 이 중요한 단서를 그냥 지나갈까 적어 놓았다. 그리고 동시에 텍스트 자체를 믿지 못했음도 고백한다. 믿을 건 자신밖에 없었기 때문에 주석을 길게 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편집자는 이 중요한 스포일러를 알고도 모른 척 했다. '독자'입장에서라면 이 주석은 이 한 줄 외에는 필요가 없다. '화상을 입은 여자라는 뜻'. 그러나 사족같은 말을 덧대 책 두 권이 불타버렸으니. 원뜻을 살폈을 때. 이 짧은 글은 옮긴이와 편집자가 책 읽기를 방해해서 화가 난 이야기로 가름할 수 있다.




자본론 공부

김수행/돌베개/2014

 

현대해상 사옥. 자본론 공부. 백수

세계는 하나의 경이가 오래 놀라운 이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다름이 소통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선비와 피어싱

조희진/동아시아/2003

 

좋은 원고는 언제든지 안타까울 수 있다. 




뇌, 인간을 읽다

마이클 코벌리스/ 반니/2013

 

흥미로운 텍스트가 모두 책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십에 가까운 정보의 나열. 이 포커스로서 '뇌'는 너무 많이 소비된 건 아닌가. 일러스트로 여백을 채운 건 괜찮았다. 중학생~고등학교 1학년. 그 다음 독서를 위해서라면 읽을만 하다.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

도은 여연 하연/ 행성B잎새/2012

 

아이들의 글이 좋다. 흙과 가까이 살려고 하는 엄마의 솔직한 마음이 마음에 든다. 

농촌에 있으려는 당위성을 '알기에' 실천하려는 삶과 

할 수 없이 농촌에 머물어 농부의 삶이 '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 '다름'에서 나오는 글의 결도 물론 다를 것이다. 그러나 농촌의 가장 안쪽으로 파고들려는 '외부'에 있기 때문에 비롯된 욕망을 '인정'하고 악착같이 달려드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런 바깥이나 욕망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녀에게 '농촌의 삶'을 살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선화

김이설/ 은행나무/2014

 

괴로움을 열심히 썼지만 표면적이고 갈등이 폭발하지만 불발한다. 꽃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손이 항상 부르트는 것은 안타까운 실제적 고통이지만, 그 밖에 선화가 처한 삶은 작위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극단이다. 이것은 '연기'다. 인간적인 고통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이야기'가 될 수 없다. 고통을 보여주지 않고도 고통스러운 오늘이 매일 반복되는데, 은유라는 아름다운 말을 두고서 폭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울을 모른척 하고 걷는 그림자에게 마음을 더 쓰는 저녁을. 작가는 모르는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이현정/ 현실문화/2002

 

1978년에 쓰인 글이 아직도 핫할 수 있다면. 아직도 그 말에 열광할 수 있다면. 그때 충격을 주었던 생각이 넓어지기는 커녕 깊어지지도 않았다면. 세상은 달팽이 보고 느리다고 말해선 안된다. 

제목과 표지를 바꾸고 다시 태어나도 좋을 책이다. 책이 아니라, 그 책을 읽을 달팽이들에게.




멍게

성윤석/ 문학과지성사/2014

 

한 달은 읽은 것 같다. 앞으로 한 달은 더 읽어도 좋겠다. 촌스럽다. 말을 많이 비워서 읽는 사람의 놀 곳을 마련해준다. 나서지 않는 말들, 더 멋있어지고 싶고, 더 잘날 수 있는 말들을 다 가렸다. 좋은 시집이다.




어둠 속의 시 / 끝나지 않는 대화 / 고백의 형식들

이성복/ 열화당/ 2014

 

싸구려 술집이었다 그날 시를 보여줬다 시는 몇 개 되지 않았지만 내 거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가 되기 전에 보여줬던 동생을 빼고서 처음이었다. 그 시를 보여주는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원래 별 것도 아닌게 목숨처럼 소중하지 않나. 내가 '시'라고 보여줘서 그것은 '시'가 되었다. 생일 날 아침, 세 권의 책이 도착했다 그 때 마음을 당신은 알 수 있을까 




귀신 간첩 할머니 -근대에 맞서는 근대

공선옥 외/현실문화/2014

 

좋아하지 않는 말들. 미움 받는 말들. 밀려난 말들의 연원을 캐보려는 국내 외 작가들이 모였다. 보는 것에서 오래 생각하는 것으로. 전시와 글이 만나면 이런 꼴을 갖춘다는, 예가 될 만하다.





환대의 공간

장이지/현실문화/2013

 

내가 이 긴 포스트를 작성하면서 꼬박 두 시간을 앉아 기다릴 수 있었던 건 이 제목이 제일 마지막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아직 이미지의 운명이라던가 인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따뜻한 지하철이었고 내리고 싶지 않는 지하철이었다. 다정한 목소리의 시인과 두런두런 시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가령 이런 글에는 연필로 줄을 그어야지 마음먹으며. 자판을 두드리는 일을 생각했다. 좋은 글을 보면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힘이 난다. 


 개인적으로 나는 박용래를 좋아한다. 영향을 받았느냐고 하면, 어느 부분에 있어서인가는 분명히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 하겠지만, 나는 내 시가 박용래의 시풍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역시 한참 못 미친다고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박용래를 흉내 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박용래를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박용래가 좋다. 『먼 바다』(1984)에 실려 있는 박용래의 사진도 매우 좋아한다. 어쩌면 나는 이 사진 때문에 박용래를 좋아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속의 시인은 털모자를 썼다. 머플러도 둘렀다. 입가에 주름을 만들면서 웃고 있다. 눈매도 어딘가 선하다. 



당연하게도 내가 반한 구절은 '머플러도 둘렀다'이다. 세상에 

'머플러도 둘렀다'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구절이 될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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