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버지의 해방일기> 정지아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아버지가 죽었다. 딸은 장례가 열리는 동안 아버지의 죽음이 부른 사람들을 맞이하며 자기가 알던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아버지를 새롭게 만난다. 아버지의 삶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나?

 

빨갱이의 딸인 작가는 아버지와 완전한 거리두기에 성공하며, 한 줄로 쓰일 수 없는 현대사를 관통하는 것이 야속할 지경으로 간명한 역사를 휘휘지나, 아버지가 만난 사람들, 아버지로 인해 삶이 망가진 사람들과 살아난 사람들을 보게 된다. 


열일곱의 나는, 방물장수 하룻밤을 재우는 일에 민중을 끌어들이는 아버지나 그 말에 냉큼 꼬리를 내리는, 꼬리를 내리다 못해 죄의식에 얼굴을 붉히는 어머니나, 그때 읽고 있던 까뮈의 <이방인>보다 더 낯설었다. 13p

 

::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 작가는 17살 무렵부터 냉소로 부모를 대한다. 민중과, 죄의식과, 까뮈의 대치를 보라. 냉소는 부모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그 정체성을 내려 받을 수 밖에 없던 작가가 부모에게 먹히거나 떠밀려가지 않고 자신을 확보하기 위한 몸짓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민중이 그날 밤 내게 남긴 것은 벼룩이었다. 대신 가져간 것은 서까래에 매달아놓은 마늘 반접이었다. 나는 한달 가까이 북북 몸을 긁으며 민중을 욕하다가, 혁명가를 탓하다가, 그러다가 불현듯, 낄낄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사라진 마늘 반접이 내 부모의 진지에 대한 통렬한 배신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러나 배신당한 당사자들은 나와 달리 배신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13p

 

:: 사라진 마늘 반접. 민중을 욕하고 혁명가를 탓하다가 낄낄 웃음을 떠뜨리는 혁명가의 딸. 웃음의 배치가 놀랍고, 재미있다.

 

아버지는 1948년 초, 5.10 단선반대 유인물을 살포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아버지 성기에 전선을 꽂고 전기고문을 했다. 전기고문은 사시 말고도 또다른 후유증을 남겼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말했다. "고문 중에 젤 쉬운 것이 전기고문이다. 금방 기절해붕게."

26p

 

:: 이렇게 간결하게 쓰일 수 없다. 그것이 심지어 아버지의 일이라면. 

 

아버지는 정면을 바라보는 것인지 45도 오른쪽을 바라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답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신이 나서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흔 넘어서야 이해했다. 고통도 슬픔도 지나간 것, 다시 올 수 없는 것, 전기고문의 고통을 견딘 그날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찬란한 젊음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27p

 

:: 어떤 사실은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다. 이것을 한 줄로 가름해 버리는 것도 엄청난 능력이다. 말하고 싶은 것을 참고, 그 다음을 어서 보여주는 것. 고문의 결과가 아니라, 아버지의 '찬란한 젊음의 순간'을 떠올리는 작가. 이 대비가 마음이 아프나 '다시 올 수 없는 것'에서 완전한 아버지의 현현이 빛난다. 그날을 뚫고, 살아내서 지금 아버지가 여기 있다.  

 

작은아버지의 손에는 소주병이 들려 있었고, 삿대질을 할 때마다 맑은 소주가 출렁거리며 쏟아졌다. 어느 순간 우리 집 작은 마당에 아침의 첫 햇살이 쏟아져내렸다. 마당으로 쿨렁쿨렁 쏟아지는 소주에도 햇살은 어김없이 내리꽂혔다. 소주병이 튕겨낸 찬란한 빛이 술에 절여진 작은아버지 몸을 에워싸는 듯했다. 그 빛에 쏘이기라도 한 양 작은아버지는 순식간에 뒤로 쾅하고 넘어져 마당에 대자로 뻗었다. 39p

 

::맑은 소주와 햇살의 대비. 좋은 날씨 위로 고꾸라지는 인생. 한국어가 모국어인 기쁨.

 

작은아버지는 평생 형이라는 고삐에 묶인 소였다. 그 고삐가 풀렸다. 이제 작은아버지는 어떻게 살까? 41p

 

"이런 반동 신문을 멀라고 아깐 돈 주고 보는 것이여! 한겨레로 바꽈 이번 기회에. 펭상 교련선상 함시로 민족 통일의 방해꾼 노릇을 했으믄 인자라도 철이 나야 헐 것 아니냐!"

"니나 바꽈라. 뽈갱이가 뽈갱이 신문 본다고 소문나먼 경을 칠 텡게."

두 노인네는 매일 아침 투닥거리며 늘그막을 보냈다. 신문을 들고 집에 온 아버지는 어머니와 내 앞에서 평생 교련선생 한 놈이 조선일보만 본다고 박선생 흉을 보았다.(...) 어느 날 짜증이 나서 물었다.

"생각이 다르면 안 보면 되지, 애도 아니고 맨날 싸우면서 왜 맨날 놀아요?"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신문을 촥 펴면서 말했다.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 

아버지에게는 사상과 사람이 다른 모양이었다. 47p

 

::흥미로운 장면들. 살아 움직이는 대사들.  

 

삼천만원이나 이천만원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원룸 수준의 몇푼 안 되는 아파트긴 하나 그걸 팔아서라도 돈을 마련했을 것이다 여느 딸들처럼 원망과 걱정을 늘어놓으며. 그런데 아버지는 말했다. 

"한 삼만원만 있으면 쓰겄다." 53p

 

가슴을 이렇게도 무너뜨릴 수 있구나.

 

내가 외면한 것은 하동댁이 아니라 위대한 혁명가의 외피 속에 감춰져 있을지 모르는 뻔한 남성의 욕망이었을 것이다. 그때 아버지는 감옥에 있었고, 나는 아버지가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위대한 혁명가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그래야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66p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