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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비자림에서

_봄밤 2016. 6. 19. 16:53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황지우, 「길」중에서




그 여자는 분노에 차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김포공항에 내릴 때까지 욕을 멈추지 않았다. 공항 철도에서였다. 대부분 공항에 도착하는 이들이 탔기에 달리 어디서 내릴 수가 없었던 점, 자리를 옮길 수도 있었을테지만 저러다 말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사람들은 결국 내릴 때까지 그 욕을 다 들어야 했다. 여자는 너무나 분명한 목소리로 욕을 했는데, 너무나 생생했기에 욕을 듣는 당사자가 곁에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상대방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당장에 그 놈을 찾아가 눈길을 쏴주고 싶었지만 그런건 없었다. 여자는 문쪽 창을 바라보며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건 혼잣말에 가까운 전화였고 아니 어쩌면 혼잣말을, 하고 있던 거였을지도 몰랐다. 여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무너지거나 그래서 혹시라도 울게되면 조금은 이해해보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일관된 톤을 유지하며 욕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대상은 그의 전애인이거나 현재의 애인이었을텐데, 물론 아버지나 큰아버지, 남동생, 혹은 언니라는 설정도 가능하다. 써야할 말이 얼마나 많아질 지 모르므로 이런 가정은 넣어두자. 여자는 주로 두 개의 문장을 이용했다. 두 문장은 앞뒤를, 선후를 이끌고 보완하면서 그녀의 감정을 순환하고 있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엔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주요하게 쓰인 단어는 '거지새끼', '훔치다', '돌려놔', '거지새끼냐?', '몰래 가져가?', '있는 놈이 더 하다' 였다. 더 많은 욕이 있었지만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때는 당연히 그 '새끼'가 여자의 현물을 훔쳤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여자가 털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여자는 짐이 가득했고 김포공항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인천공항에서 내렸을텐데. 남아있는 사람의 정나미를 완벽하게 떨구는 전화, 어디론가 떠나는 채비가 출중했다. 지금 나는 그녀의 전화가 실은 통화를 가장한 혼잣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여자의 꿈속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여자는 꿈속이라서 창피함도 없이 욕을 이십분 동안 할 수 있었다. 여자의 꿈에 관객으로 있었던 나는 이 여행이 엉망일수 있겠다는 전조를 조금 더 확실히 감지하고 있었다. 하나부터 십일까지 엉망을 완성하기 애쓰던 사람처럼, 엉망이었다. 







비자림에 왔다. 비자나무 숲이라는 뜻이다. 숲을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비자나무는 아주 커서 그들이 일군 숲에는 해가 들어오지 않았다. 버스로 오기가 불편한 곳이라서 차를 가져온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중년의 부부가 많았다. 어떤 부부는 키가 꽤 컸다. 얼굴을 다 가릴 수 있는 모자를 썼고, 손을 꽉 잡고 걷는 걸 보며 보기 좋은 모습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나는 그 뒤였다. 천천히 걷는 것을 애썼던 것은 아니었지만 더할 수 없을만큼 천천히 걸었던 것은 나무를 설명하는 표지판이 나오면 그때마다 쪼르르 가서는 그걸 다 읽고, 이게 그 나무라는 것을 한 번 보고 다시 길가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까 내 앞에서 걸었던 사람들이 벌써 사라져 없는데도 그들은 아직도 내 앞에 있었다. 그들은 걷기는 했지만 자꾸 뒤쳐지고 있던거였다. 가만보니 남자의 오른팔에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그러나 지지하지 않는 지팡이였다. 여자와 남자가 잡은 손에는 힘이 깊게 들어갔는데 그것은 남자의 왼쪽 다리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왼쪽 다리는 춤을 추듯이 움직였다. 남자의 원함과 상관없이 비틀거렸는데, 그걸 붙잡는다는 듯 여자는 미묘하지만 그가 통제하기 어려운 보폭에 꼭 맞추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 잡은 손은 남자의 조금 불편한 다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지 않으면 사라질 위험에 처한 것처럼 사람들은 사진을 찍었다. 몰린 까닭인지, 휴가지에서는 더했다. 비자림에도 소리가 가득했다. 남길 수 있다면 더 좋은 모습을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진을 찍기에 더할 나위 없는 사람들이었다. 젊거나, 같이 왔거나, 지금이 행복하거나, 혹은 그렇다고 믿는 사람들. 남자는 다리를 절었는데, 그 저는 모습이 완벽했다. 원래부터 다리를 절었던 사람처럼.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을것이다. 두 다리는 힘껏 뛰어본 적이 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서, 언젠가 축구를 했을 것이고 한 시간이 걸리는 비자림을 이십분이면 다 돌고 남았을 시절이 있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보통의 예상이라면 그 여자는 두 다리가 건장한 시절의 남자를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뛰어오는 남자를 만났던 누군가가 그녀라는 가정도 이상하진 않다. 다리가 불편하든 불편하지 않든, 그 남자가 '그 남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으로 여자의 마음이 뚝 떨어졌던 일은 있었겠지만 그게 마음의 변함을 의미하지는 않았을거라는 것도. 

남자는 지금 다리를 절게 된 자신을 얼마나 '자신'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어디까지 나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한 적은 없었을까. 내가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에 맞딱들이게 된다면, 나를 혼동하지 않고, 나라는 몸에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징후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손바닥을 들여다 보았다. 갈라진 손금. 다소 젊었을 적 비자림에 왔었고, 혼자였고, 어떤 부부의 뒤를 걸었다. 부부는 행복해 보였다. '당신의 다리만을 사랑한 것은 아니에요,' 라는 여자의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게 내 다리에요.' 라고 말해야만 했을 남자의 심정은 너무 아파서, 따라할 수 없었다.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어디까지 당신에게 보여야 할까. 보일 수 있을까.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중년의 부부였던 것처럼 비자림을 걸었다. 원래부터 비자림을 천천히 걷고 있는 중년의 부부처럼 지금도 비자림을 천천히 돌고 있다. 여자와 남자의 얼굴을 각각 가린 챙 넓은 모자의 테두리가 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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