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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Take your marks

_봄밤 2016. 5. 15. 17:03

Take your marks

 

서른이 되기 전의 일이다. 듣자하니 스물아홉에서 서른 살에 사이에는 무슨 협곡이라도 있는지 그 길 지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라는 거다. 이십대를 지나는 통증은 적지 않았으나 막상 그때를 지나와 보니 그냥 나이를 먹는 일이었다. 그저 (스물아홉의)겨울에서 (서른의)봄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시간.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것은 물론 사건같은 일이었지만 제아무리 큰 획의 사건이라도 그것만으로는 생이 꾸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젠 안다. 삶은 좀 더 지진한 일상으로 꾸려진다. 그러니까 월요일과 퇴근, 야근, 장보기, 점심식사, 불금, 드라마 같은 것들로. 이런 단어는 삶의 거의 모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생의 넓은 시간에 걸쳐 포진할 뿐 에 대한 이해를 깊게 돕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른이 된 후의 일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출근, 주오일과 야근. 그리고 야근 또 야근 같은 단어들에 긴 잠을 부러워 한 적 있다. '동면.' 그러나 이것은 실은 숨을 좀 잊기로 하는 일이다. 계절 하나를 잠에게 내줘야 하는 혹함이다. 몸의 정지는 생활을 '없음'으로 튼다. 이 상태를 과연 ''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러한 감내는 결코 부러움으로 치환할 수 없었다.


일과 잠 사이의 간신히 있는 시간을 가꾸는 것. 난 치듯이 그 시간을 보듬는 '취미'를 두기로 했다. 취미가 없었던 사람처럼 말하는 것은 그간 가졌던 취미가 그저 평소에 좋아하는 일이었지 생활을 윤택하게 꾸리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낮잠><멍 때리기>는 일과 잠 사이에 빈 공간을 만드는 일에 그쳤다. 바야흐로 취미를 발명해야 할 때였다.


아침이 아니라 새벽이라고 불러야 할 시간에 집을 나섰다. 탈의실에서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안경을 쓰고 물에 들어가는 수영을 해보기로 한 것. 일련의 행동은 마치 다른 세계에 잠입하는 일 같았다. 첫 날, 간단하게 몸을 풀고 물에 들어갔을 때 나를 촘촘하게 감싸는 물속의 느낌이 진하다. 당시 물에 뜨는 것조차 할 수 없었으므로 수영을 배울 가능성으로 나는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대략 이렇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바닥에 닿지 않을 수 있게 된다는 것. 어떤 노력으로도 지면과 나를 띄어 놓을 수 없었던 지난한 뭍가의 슬픔을 달래 주는 것 같았다.


일주일에 세 번, 동네 수영장에 간다. 몸을 최대한 드러내며 꾸미거나 더할 수 없는 수영복의 룰을 떠올린다. 그때까지의 삶이 거짓 없이 만들어온 있는 나 그대로를 보여야 하는 일이었다. 새벽반 수영복이야 회색에서 검은색으로 채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비슷하게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1인의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무엇보다 나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소독약 냄새가 알싸하게 풍기고, 파란색 타일로 물이 파란 빛을 내는 새로운 공기가 있다, 저마다는 발을 찬다, 손을 뻗는다, 날 때부터 체득해 온 몸의 언어를 잠시 내려놓고 다른 언어를 배운다.

 

'Take your marks(제자리에).' 취미는 경기가 아니므로 총은 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 물 가장자리에서 삶의 한 복판으로. 나는 더 이상 종이 다른 이들의 긴 잠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를 설명하는 거대한 단어들에게 깔리지 않고 간절한 호흡으로, 스스로 겨우 발음 할 수 있는 단어를 하나 둘,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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