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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어떤 사진

_봄밤 2016. 6. 12. 21:47




어떤 사진을 보고 있다. 어떤 장면이 사진이 되더니 손에 들렸다. 빛이 잘 들어오는 거실에서 남자와 여자는 적당한 거리다. 앞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여자는 실내인데 양산을 쓰고 있다. 자세히 보니 여자의 배는 많이 불러 있었다. 말하자면 만삭 사진이라든지, 그런걸 찍은 것 같다. 어쩌면 진짜 만삭 사진을 찍기 위한 사전 연습인지도 몰랐고, 묻진 않았지만 궁금할 것을 여겼던 남자와 여자에게로부터 왜 집에서 이런 사진을 찍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까지 궁금하지 않았는데 집요했고, 정당화하는 과정이었고, 그들은 다리를 한쪽씩 들거나 한쪽 팔을 높게 들어올려 대형을 만들었던 이유를 이야기 했다. 웃고 있으면 됐지 싶었다. 얼굴은 거짓이 없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진 않았다. 이런 건 말하는 순간 정말 이상해지니까 잠자코 다 들어주었다.


사진의 주인공들은 물러가고, 사진과 내가 남았다. 나는 그 사진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다. '보통의 날씨, 보통의 웃음, 보통의 섹스로 이루어진 주말, 보통의 나이를 살고 싶다'고 적었다. 그러나 보통이라면 좀처럼 없을 몸짓을 찍는 남녀. 우리 이렇게 사진에 들어가보자. 라고 이야기했을 수많은 시간의 함축. 한 장의 사진은 그저 팔랑일 뿐이지만 타이머를 맞추고, 하나 둘 셋 하면 이런 표정을 짓자는 대화를 받아냈다. 그렇다면 이런게 보통일까? 보통이 되어가는 과정은 심상치 않았고, 보통이 되기 위해 넘긴 장면은 만만치 않아보였다. 지금 이 둘을 있게한 최초의 한 마디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다가 그러니까 보통은 정말, 여간해서, 올 수 없는 말이네. 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섹스'라는 말에 잠깐 멈춰서 미온같다고 생각한다. 뜨겁지 않고, 차갑지 않은 사람 온도. 좋은 말이네. 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가 꿈이다. 꿈속에서 나는 어떤 사진을 보았고, 그 사진에는 왠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여자의 배는 불러 있었는데, 그들을 만나 사진에 대한 연유를 들었다. 진짜 남기고 싶은 사진을 찍기 위해 남긴 사진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이 물러간 후에는 그들이 담긴 사진을 보며 글을 썼다. 그건 '보통'에 대한 이야기였다. 잠에서 깨 이것을 진짜 적어둘지 고민했다. 반나절. 현실에서 좀처럼 적지 않으니 꿈에서 글을 썼나 싶은데, 그러니까 낮에 든 꿈은 내가 직접 타자를 치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꿈이 바라는 일에 멍한 머리를 꿈쩍거리며 받아적는다. 진짜 글을 쓰기 위한 글쓰기 연습. 우스꽝스럽게도 실내에 양산을 받쳐 쓰면서, 섹스를 설명하는 '미온'과 '온수'를 두고 고민하다가, 뜻에는 미온이 낫지만 읽히기에는 온수가 더 낫지 않을까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눈금을 재고, 어쨌거나 '보통'은 누군가를 놀래키는 온도는 아니지만 놀랍게도 오랫동안 지켜왔을 온도일 거라고, 보통은 누군가로 더께 덮히지 않고 자신이 버려지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정리하면 보통은 나를 오래 견뎌오는 것. 그래서 우리를 오래 지켜오는 것. 이건 나한테 없는 사진인데, 꿈에서 받았다고 하면 놀림 받을 것 같으니 언젠가 누군가 사진첩을 뒤적이며 자랑처럼 알려준 얘기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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