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풍경의 맛

촌스러운 방식

_봄밤 2015. 11. 29. 20:17




낮은 하늘에 마른 구름이 몇 점. 그 아래 생각났다는 듯 하나 둘 불이 켜지는 거리다. 바닥을 이는 낙엽이 스산한 리듬을 이루는 저녁, 한 사람이 이 우울함에 맞춰 어디론가 뛰고 있다. 그는 충전잭을 찾아 벌써 네 개의 대리점을 찾았다. 그의 주머니 속엔 뜀에 맞춰 불안하게 흔들리는 꺼져가는 핸드폰이 있었다.

 

그의 핸드폰은 당시 고객수를 늘리기 위해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판매하던 그야말로 보급형제품이었다. 화면은 말할 수 없이 작았고 오밀조밀한 자판을 갖춰 대체로 작다는 게 자랑인 제품이었다. 사용한지 1년쯤 되었을까. 스마트폰이 대두되기 시작하더니 모든 것을 바꾸려는 듯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그가 밤거리를 뛰어다녔던 것은 이 물결과 무관하지 않다. 바뀌는 시대를 대하는 한 사람의 무력한 태도였달지. 그의 핸드폰은 불행한 사고로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오래 사용해 수명이 다 한 게 아니었다. 시대가 그것을 밀어냈기에 버려지는 상황이었다. 그가 핸드폰에 남다른 사정이나 지극한 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제까지 함께 했던 물건이 하루아침에 구시대로 한정돼 수몰하는 마당을 그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는, 5년 전 나다.

 

한정 있는 세계였다. 나는 물리적으로 눌리는 버튼을 사랑했으며 언제나 80kb의 용량으로 절제를 일러주는 문자 용량에 탄복했다. 의미를 전하며 용량을 넘지 않도록 단어를 깎는 기술을 연마했다. 과금 되는 몇 십원의 비용도 그럴듯한 경제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핸드폰은 기능이 많지 않았다. 전화와 문자, 그리고 조악한 화질의 사진. 물질이 명확하게 갖는 한계가 사랑스러웠다. 그것은 나의 한함과 어울렸다. 나는 그런 것으로 충분했다.

 

그해 시장은 구시대의 핸드폰을 살려놓을 정도로 인심이 후하지 않았다. 기종에 맞는 잭을 더 이상 취급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몇 차례 이어졌다. 충전을 할 수 없어서 기종을 바꿔야 할 판이었다. 얼토당토했지만 그만하고 바꾸는 것이 어떻겠나, 가 그때 흐르던 분위기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그때의 주장은 아직 유효해 여전히 같은 기조로 물건을 바꾸게 한다. 물건을 버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나는 그대로 남아버리는 이상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아주 잠시다.

 

지치지 않고 좋은 것이 나오는 중에 나의 것은 항상 뒤쳐져 동일한 물음을 계속 듣는다. '아직도 그것을 쓰고 있'느냐는 물음 아닌 타박이 그때의 며칠 같아서. 믿기지 않겠지만 이 역시 한때 시대를 앞서며 다른 핸드폰을 수렁에 빠뜨렸던 제품 아니었나. 다른 것을 몰락하게 한 방식 그대로 사라질 준비를 요구받는 아이러니다. 그러나 저간의 사정이 드러날 새 없이, 주변은 빠르게 교체되며 늘 윤택한 모습을 유지한다. 이것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지만, 시간에 의해 변화하는 나의 한함을 함께 설명한다. 작년과 다르게 하는 기력을 떠올려보라. 밤새도록 마시던 술 아니던가. 엊그제 오백짜리 맥주를 먹고 토한 흑색의 낯빛은 고된 몸보다 당황한 마음의 탓이리라. 빛나는 순간만을 가질 수는 없다. 그것만으로 기억되는 것은 없다. 이런 시선은 언젠가 물건이 아닌 다른 것에게도 적용될지 모른다. 기계도 고단하고, 나도 함께 고단해 마땅히 헤어질 시간을 받았으면 좋겠다. 나는 다음 세대의 스마트폰을 유예한다. 나 역시, '언젠가'로 한하는 것임을 기억하려는 촌스러운 방식이다.

 


_


이건 초고고, 친구가 봐준 것이 더 좋았다.


또 다시 폰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뒤편을 만질 때마다 조각이 떨어진다. 엊그제 잠결에 발견했고

언제 깨졌는지는 모르겠다. 최근 2주 이내에 깨졌다는 것만 알 뿐.

우리 오래 만났으니, 그만하면 되었으니 이제 보내달라는 것만 같다. 






'풍경의 맛'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가 아닌 모든 것-무처럼 속으로 단단하게  (0) 2015.12.15
오른쪽 볼  (0) 2015.12.06
대게 소회  (0) 2015.11.12
생일 축하  (0) 2015.11.04
김윌리  (1) 2015.10.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