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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꼭 이루고 싶은 한 가지-무가 아닌 모든 것


고백처럼 무를 생각한다. 나를 스쳐간 이만 오천여개의 무를 생각하는 밤, 지금까지 어떻게 무 없이 한 해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거의 모든 사람이 무를 말하지 않고 내년을 생각한다. 믿을 수 없는 얘기다. 내게는 이 를 생각하지 않는 일이 정말 같이 느껴진다. ''란 무엇인가. 조금 떨어져서 살피면 속된 자연에 굳세게 자라 '이것이 흰색이다'라고 알려주는 맑은 얼굴이다. 잘 뻗은 몸뚱아리에서 상쾌하게 이어진 머리까지, 어디 하나 버릴 데 없이 조림이며 국물을 내는 밑재료로 아낌없던 채소다. 김장철이면 시뻘건 고춧가루에 묵혀 깍두기라는 이름으로 산산이 분열하기 마다하지 않았던 무. 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말하고 싶은 무는 이제껏 만나본 적 없는 날 것이다. 땅속에 박혀서 흙 위로 길쭉하게 나온 이파리가 올해 내 쪽으로 뻗친 운명은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 어느 누가 노동이 머리를 맑게 한다고 했던가. 무를 뽑아본 사람은 함부로 일의 수고로움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것이다. 무는 골골이 너무 많았다. 나는 손이 두 개인 한 사람. 그러나 무를 뽑지 않으면 내 발뿌리가 뽑혀 나갈 절체절명이다.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무를 수확하는 일은 한 달 동안 계속되었다. 일하다 고개를 들면 지평선에 걸린 시퍼런 무 이파리가 지워지질 않았다. 괴로웠다. 나는 그때 ''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골똘했다. '시절'이 거의 전부인 농사에서 몸이 쇠하신 부모님은 김장철에 몰려 무를 수확하게 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날이 매서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눈이 앞을 가릴 만큼 치기도 했다. 멍한 머리에도 겨울이 깊어질 것이고, 그게 지나고 나면 새해가 올 것이 얼얼하게 믿어졌다. 하지만 무에 대해서라면 ''을 알 수 없었다. 이 무밭은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함부로 '시작'을 말할 수 없는 입이 되었고...나는 올해 취업에 모두 실패했다. 잉여의 몸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면접의 경쟁률은 3:1이었고, 그 발표가 무를 수확할 즈음이었다. 어쩌면 나는 무 대신 다른 것을 쥐고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이 무가 아니었다면.


뿌리 쪽에 흙을 털어내면 어머니는 무를 가지런히 다섯 개씩 묶어 봉투에 담으셨다. 힘들게 뽑은 무를 보기에도 좋고 트럭에 싣기 좋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보기 좋아 보인다는 말에는 큰 인내가 들어 있다. 손이 몇 번이나 더 갔고, 손이 가는 것만큼 마음도 많이 실려야 했다. 그러나 막 땅에서 수확해 날 것 그대로 뉘이는 ''라는 점에서 무는 아무래도 무 이상의 무엇이 될 수는 없어 보였다. 일련의 고됨, 그 연유를 여쭙지는 않았다. 아주 나중에 가서, 무가 하나도 없는 밭에 서서 알게 되었다. 한 해를 기르고 내보내는 예 같은 것, 흙에 기대 사는 이들의 정성이었다는 것을. 정성을 입고 멋지게 새벽시장에 나가는 무였다.


한 달 동안 이만 오 천여개의 무를 뽑았다. 1톤 트럭에 이천 여개 꼴로 실었다. 하루를 꼬박 일하신 아버지는 밤새워 무를 대전으로 나르셨다. 기도처럼 새벽 경매에 부쳐졌고 배신처럼 한 트럭에 오십만원 백만원으로 널을 뛰었다. 저녁에 쓸려 들어와서는 내일 아침 무가 얼어터져 있기를 바라던 몇 날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꿈처럼 다음 날 얼얼한 손목으로 잠을 깨 무밭으로 나가던 것이 불과 이주 전.


2015년 끝에 내몰려 책상에는 두 개의 달력이 머리를 맞댄다. 나는 2016년의 달력을 1월도 들춰보고 사월도, 칠월도 들춰본다. 다음 해를 내년이 아니라 2016년이라고 정확하게 부르는 점에서 나는 역시 올해 만난 무와의 시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올해 나는 만 여개의 무를 쥐었다. 곳곳의 사람들의 겨울에는 내가 꽉 쥐었던 무가 식탁마다 자리할 것이다. 무에 예하듯 포장하던 어머니와, 산처럼 무를 이고 고속도로를 달려 나르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또는 질리도록 시퍼렇게 보이다가도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텅 빈 무 밭 같은 걸 떠올리며, 요새는 아무래도 무보다 한 없이 가는 볼펜을 쥔다. 2016년에 이루고 싶은 꼭 한 가지. ''가 말 없이 속으로 단단했던 것처럼, 그것은 내 안으로 옹골차게 적어둔다.





무처럼 속으로 단단하게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신다. 올해는 무를 심었고, 이만 오천 개를 수확했다. 무는 하반기에 부모님과 내 일상의 전부였다. 매일 밭에서 무를 생각하다보니, 뉴스 아나운서가 무를 말하지 않고 내년을 예상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속살 단단하고, 말간 흰색의 뿌리는 무(無)가 아니다. 무는 잘 뻗은 몸뚱어리에서 상쾌하게 이어진 머리까지, 어디 하나 버릴 데 없는 채소다. 고춧가루로 버무리면 아삭아삭하고 시원한 깍두기가 되고, 썰어서 참기름 넣고 볶으면 감칠맛 나는 무나물도 된다. 


  하지만 농사짓는 사람들의 무는 또 얘기가 다르다. 어느 누가 노동이 머리를 맑게 한다고 했던가. 무를 뽑아본 사람이라면 함부로 일의 수고로움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터. 무는 골골이 빼곡했고 나는 손이 두 개 뿐. 무가 뽑히나 내가 뽑히나 끝장을 보자.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무를 수확하는 일은 한 달이나 계속되었다. 아무리 뽑아도 고개를 들 때마다 지평선에 걸린 시퍼런 무 이파리가 지워지지 않았다. 


  '시절'이 전부인 농사다. 이제 무릎이 약해진 부모님의 시절은 겨울이다. 그래서 김장철에 몰려 무를 수확하게 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날까지 매서워지기 시작했다. 눈이 앞을 가릴 만큼 몰아치기도 했다. 일기예보를 보면 눈은 언제 그칠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무는 끝을 알 수 없었다. 무밭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다.   


  긴, 겨울 전야였다. 한 달 동안 이만 오 천 여개의 무를 뽑았고, 1톤 트럭에 이천 여개 꼴로 실었다. 하루를 꼬박 일하신 아버지는 다시 밤을 새워 무를 대전으로 나르셨다.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무를 새벽 경매에 붙였고, 고작 오십 만원에, 때론 백만 원에 팔려 나갔다. 헐값에 무를 넘기고 저녁에 들어오면 차라리 내일 아침에는 무가 얼어 터져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도 새벽이면 덜 깬 꿈자리를 박차고 얼얼한 손목을 주무르며 무밭으로 나갔다. 불과 몇 주 전의 일이다.


  무를 뽑으며 알 수 없는 ‘끝’에 대해 생각했고, 동시에 함부로 '시작'을 예단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올해 취업에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본 면접의 경쟁률은 3:1. 무를 수확할 즈음이었다. 일이 잘 풀렸다면, 나는 무 판 돈 대신 다른 것을 쥐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무가 아니었다면, 끝의 조심스러움도, 시작의 모호함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2015년도 끝자락이다. 지금 내 책상에는 두 개의 달력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나는 2015년의 달력을 1월부터 차례로 들춰봤다. 11월, 12월이 묵직하게 넘어가는 것은 역시 무와의 시간을 쉽사리 지나칠 수 없음이다. 올해 나는 만 여 개의 무를 쥐었다. 전국 방방곡곡의 식탁마다 내가 머리채를 쥐고 뽑아낸 무가 각색의 모양으로 자리하겠지. 


  무에 예를 갖추듯 포장하던 어머니와, 산처럼 무를 이고 고속도로를 달려 나르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또는 질리도록 시퍼렇게 있다가도 지금은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텅 빈 무 밭 같은 걸 떠올리며, 한 해를 마감한다. 그리고 2016년에 이루고 싶은 꼭 한 가지. '무'가 말없이 속으로 단단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되기를. 








'손을 댔다'고 말하기 보다 '손을 더'했다고 해야할 것이다. 다른 온도가 만나 몰랐던 온도로 태어난다. 

단정하고, 더 예의발라졌다. 여기 들어간 마음이 다치지 않고 내것과 또 다른 것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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