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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약국 갈까-임승유

_봄밤 2015. 10. 11. 21:11



우리 약국 갈까



임승유




 소풍이라도 가자는 것처럼 말하니까


 호루가기가 생각났다 호루라기를 부니까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피가 돌기 시작했다 손끝까지 가서

불끈 쥔 주먹이 될 거야 숨이 턱까지 차오를 거야 핀

셋으로 아스파라거스를 뽑아냈다 목에 걸린 달리아

가 호루라기는 고여 있다고 말한다 하늘이 텅 비었

다고 말한다


 지렁이도 질병사를 할까 귀뚜라미는 구름은

 더 작아지고 싶다면 약국에 가는 거다 약국은 알

약들의 세계 분말들의 세계 목구멍의 세계


 의자처럼 창백하다는 건 뭘까


 에 대답하기 위해 우린 약국에 가고 있었던 거잖아


 오렌지가 먹고 싶었다면 소풍을 가자고 하지 그랬


니 대관람차를 탄 것처럼 피로하구나 오렌지가 먹고

싶었다면오늘 아침의 신발 정리와 수첩과 물병을 

다 합쳐 오렌지가 먹고 싶었다면


 우리 소풍 갈까

 그렇게 말하지 그랬니





임승유,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 문학과 지성사 201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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