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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

홍등은 위태로웠고

_봄밤 2015. 9. 25. 01:02



불과 7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어둠이 빈 곳 없이 들어찼다. 홍등은 위태로웠고, 비가 보태졌다.


길 폭은 두 사람에게 어울렸고. 계단에서는 한 사람으로 충분했다. 문을 열어놓아 안이 잘 보이는 가게에서는 창 밖으로 바다가 잘 보였다. 그것은 식탁께에서 움직였다. 창으로 비가 내렸다. 비는 그치지 않았고 부산하게 떨어졌다. 색색의 우산에도 사람들은 움직일수록 젖었다. 온 곳을 흐르는 취두부 냄새. 산세가 깊었고, 여기에선 보이지 않지만 겹겹으로 있는 산 어느 한 면에는 작은 집모양의 무덤이 가득했다. 


사람들의 옷깃이 스쳐 거리를 상하게 둔다. 그러나 이곳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 홍등이 켜질 일도 없겠다. 거리가 상하는 대신 이곳에 사는 이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다. 혼자 와보니 혼자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무엇이든 파는 사람이 좁은 거리에 가득했고 연인이나 친구들끼리 온 많은 외국인을 보는 즐거움으로 그 밤을 걸었다.

 

어떤 가게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가 성의없게 흘러나왔다. 나는 어두운 표정이 되어 그곳을 지났다. 회상은 그렇게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 전편에 흘렀던 노래는 마음에서 끊길 듯 말듯 들렸을텐데. 그 볼륨을 꺼트리며 귀로 꽂히는 '진짜 노래'는 이곳에 울릴리가 없다. 피하고 싶어라. 적어도 사람에게는 직선이 가장 먼 길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하루 저녁 스치다시피 지나갈 '손님'일 뿐인 이들에게는 혼을 잡아야 하는 귀신처럼 말 걸 필요가 있었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옛 거리를 한 바퀴를 도는데 보통 40분, 그러나 이따금 서있거나 무엇을 사 먹을 경우 한 시간도, 두 시간도 걸린다고 했다. 엣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두 갠데, 이들은 큰 도로로 이어진다. 이때 거리는 걸어서 십분 정도. 두개의 입구는 곧 정거장과도 가까웠는데, 조금 더 지대가 높은 윗쪽의 입구가 내가 있는 숙소와 오분 정도의 거리로 연결 되었다. 이제는 맞을 수 없이 쏟아지는 비. 더 이상 무엇을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을 때 계단을 서둘러 내려왔다. 실은 비와 함께 사람을 피했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비를 맞으면서도 사진을 찍었고, 사진 찍기 수 초전부터 웃었다. 우산을 내던지고 찍는 사진에는 약간의 괴기스러움도 있었다. 내려 올 수록 한산한 거리. 마침내 입구이자 출구인 곳에 도착했을 때, 이곳은 아랫 정거장으로 숙소와 수치상으로 15분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큰 길에서 위쪽으로 계속 걸으면 되었겠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곳이었다. 큰 도로에는 사위를 가득 채운 어둠이 척척했다. 무엇이 무서웠던지, 어둠에 큰 길로는 움직일 수 없었다. 다시 올라가 숙소와 가까운 다른 출구로 나와야지 싶었다. 다시 돌계단을 밟았고, 그 길로 나는 길을 잃어 어둠에 발이 메이게 됐다. 


홍등이 없는 아랫 거리는 이곳에 생활하는 이들의 집들이 있었다. 그들의 불은 일치감치 꺼졌고, 간간히 창밖으로 다된 텔레비전의 소리가 들렸다. 가로등도 없다. 사람도 드문했다. 다급해진 나는 테라스에 담배를 피우던 어떤 여자에게 길을 묻는다. 아마 주류를 파는 가게였던 것 같았는데 시간이 늦어 손님이 없었고 곧 오늘을 정리하려는 것처럼 같았다.


_길 좀 여쭤도 될까요. 어디로 가야 정류장으로 갈 수 있나요? 


내 앞에는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가 있는 길 밖에 없었다. 그 밤의 판단에 지금까지 온 길로는 숙소를 갈 수 없었고, 앞에 나 있는 길에는 불이 적었다. 여자는 이런 저런 말을 하려다가, 영어로는 설명해줄 수 없는 듯 우선 잘 모르겠다고, 머쓱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나는 큰 도로로 숙소에 갈 용기가 없었고, 이쯤에서는 그마저도 그 길이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선택해야 할 방향은 두 갠데, 아까까지만 해도 위쪽으로 가는게 분명한 길이 혹시 아래 방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치민거다. 해서 다시 한번 나는 손으로 이 길을 가르켜, 이쪽으로 가야하냐고 묻는데 ,다시 한 번 물었을 때에는 아마 길을 묻는 질문 외에 다른 것이 묻어 있었던 것 같다. 여자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잠깐 동안 대답이 없었다. 나는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곧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일어났다. 무엇을 결심한 듯이 테라스에서 나와 오른쪽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문을 하나 열었고 내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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