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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

어떤 작위의 세계

_봄밤 2015. 2. 28. 23:51





본래 크기에 비해 거의 2배 가까이 커진 시금치는 본래 시금치의 맛을 절반 넘게 잃어버린 것 같았는데, 맛을 보자 이상했고, 시금치가 아닌 것 같았고, 자신을 부당하게 취급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는 것 같았다. 엉터리 요리사가 만든 것 같은 국수는 확실히 엉터리 같았고, 보기에도 슬퍼 보였고, 맛 또한 슬퍼서 먹기 시작한 순간부터 슬퍼졌다. 누군가가 보고 있으면 밥맛이 떨어질 수도 있게, 거북한 마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처럼 우선 거북한 마음을 먹고, 잔뜩 불만이 고조된 얼굴로, 말 못할 사정으로 국수에 악의를 품은 사람처럼, 아니, 거의 국수에 악의를 품고, 마음을 독하게 먹고 독한 마음으로, 거의 처절하게, 젓가락으로 께적거리며 먹었는데, 그렇게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무척 궁상맞게 여겨졌다. 



정영문, <어떤 작위의 세계>135-136쪽




2배 가까이 커진 시금치 = 맛을 절반 넘게 잃어

엉터리 요리사가 만든 것 같은 국수 = 확실히 엉터리 같았고

보기에도 슬퍼 보였고 = 맛 또한 슬퍼서 = 먹기 시작한 순간부터 슬퍼졌다

거북한 마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처럼 = 거북한 마음을 먹고

국수에 악의를 품은 사람처럼 = 아니, 거의 국수에 악의를 품고

마음을 독하게 먹고 = 독한 마음으로



'내'가 보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세계라는 거울이다. '나'는 거울에 비친 것을 설명하고, 거울 바깥에 있는 것을 설명해 내가 거울을 제대로 보았는지 확인하는데. '나'는 둘의 동의, 혹은 합치를 얻은 후에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거울 바깥의 사물이 하나씩 되어보는 '나'는 <어떤 작위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그들'의 마음을 채록하지 못한 이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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