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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우리는 너로 인해 충분히 외롭다



엄마가 요즘 자주 우울해한다. 요즘 엄마는 자신과 나 사이에 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에 자신이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건 일종의 외로움인데 너로 인해 관심을 빼앗긴 것이 섭섭한 것이 아니라, 네가 들어서서 생기는 충만한 감정들을 받아들이면서도 시간이 흐를 수록 그 충일한 감정에서 생기는 두려움으로 인해 내게 생기는 동요 같은 것을 알아보는 외로움이 아닐까 싶다. 이 햇빛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내 몸에서 자꾸 밀어내려는 내 문학적인 허영을 엄마는 알아 본 거지.

아가야, 나는 사랑받는 느낌에 늘 두려움을 가지는 사람이란다. 그건 설명하기 곤란한 내 수치심이기도 하지만, 살아오는 동안 내가 가진 침묵의 많은 질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아직도 풀지 못한 내 삶의 다산한 비밀들이기도 해서 늘 이 세상의 언어로는 그것을 표현하기가 부족해 보인다. 나에게 존재하는 상반적이고 대립적인 이 상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네 엄마는 예감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 모든 것을 지금 이해하기는 곤란하지만 나로선 요즘의 내 정신 상태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구나.

오류로 범벅인 내 삶에 너라는 질서가 들어와 조금 정돈된듯했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이 불안감과 황량함은 어디에 근원이 있는 것일까? 배후를 모르는 스산한 결들이 밤마다 나의 문장에 찾아오고 있다. 우리는 너로 인해 충분히 외롭다. 이 서글픈 역능을 아는지 엄마는 밤에 내 옆에서 돌아눕기 시작했다. 

p. 77

김경주, 『자고 있어, 곁이니까』





그건 설명하기 곤란한 내 수치심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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