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소곤

그 잡부 숙소를 잊지 못한다

_봄밤 2014. 9. 27. 22:54





일을 받지 못한 날은 힘이 쭉 빠졌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생활이기에 타격이 컸다. 생활의 타격보다 일조차 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설움이 자학의 늪으로 청년을 끌어당겼다. 그런 날이면 청년은 텅 빈 잡부 숙소에 누워 종일 몇 번씩이고 자위를 하곤 했다. 어떤 땐 허물이 벗겨진 그곳에서 핏물이 배어 나오기도 했다. 

일은 대개 건축공사장 일이었다. 어떤 날은 토목이었고, 어떤 날은 목수 데모도(보조공), 어떤 날은 조적이나 설비 데모도였다. 질통을 짊어지거나 방통을 치거나 공구리를 치거나 전선을 끌고 다녀야 했다.

잡부들에게는 가장 지저분하고, 가장 힘겨운 일들이 남겨져 있었다. 청년은 그런 일을 하는 자신이 소나 말이 되는 기분을 종종 느겼다. 하루 종일 말없이 골재를 옮기다 보면 인격이 아닌 체력으로만 존재를 인정받게 되는 자신이 서글펐다. 

함바집이 따로 없는 작은 건설 현장에서는 카스텔라 하나와 우유 하나가 전부였다. 시원한 우유 맛이 싫진 않았지만, 점심나절까지 그 힘으로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반계탕 한 그릇을 먹고 나면 비로소 온몸에 기운이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날이면 괜스레 더 울적해져 누군가에게 전화라도 걸어보고 싶어 공중전화 박스 주변을 오래 서성이기도 했다. 하지만 늘 걸 곳이 마땅치 않았다. 외로워 밤늦게까지 긴 일기를 쓰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로 보내는 시를 적기도 했다. 늘 수취인 불명의 아득함이 가슴을 저미게 했다.

이렇게 동가식서가숙 떠돌이 생활을 하다 2년여가 지난 후 간신히 서울 하늘 아래 보금자리 하나를 얻었다.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8만 원. 저녁에 들어갈 때면 두 눈을 꼭 감고 전기 스위치를 올려야 했다. 지하방에 들끓는 바퀴벌레와 날벌레가 제자리를 찾아 숨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곳에서 청년은 자신과 함께해왔던 그런 밑바닥 사람들의 삶을 시로, 글로 적기 시작했다. 

십수 년이 흘러 이제 청년은 마흔을 넘은 장년이 되었다. 귀여운 아이와 착한 아내와 더불어 좁고 빛이 잘 들지 않지만 아늑한 전세방도 하나 얻었다.

청년은 자신이 꿈꾸던 시인도 되었다. 널리 촉망받지는 못하지만 가끔은 지면도 얻었다.

장년이 된 청년은 지금도 그때의 일을 적어보곤 한다. 잘 있니? 그 잡부 숙소는 가끔 들러보니? 그때의 사람들은 모두 안녕하고? 결핵은 다 나았나요? 언제나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장년이 된 청년은 가끔 이건 아닌데, 이런 건 아니었는데 하며 그때를 돌이켜본다. 쓰라리고 아팠지만 그때만큼 해방을 향한 꿈으로 간절했던 적이 없었더라고. 




송경동, 「그 잡부 숙소를 잊지 못한다」,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봄날의책.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