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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경복궁

_봄밤 2014. 1. 10. 12:12




꼭 오백년이 되었다. 이 곳에서 멈춰 볕을 쬐던 사람은 모두 투명해졌다. 투명해져서 눈 크기만한 창살을 지나갈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 오분 정도 서 있었다. 살 안쪽으로 단청이 무지개빛 내는 것을 보았다. 이 창살 앞에는 기둥과 초석이 기둥과 초석을 마주보고 있었다. 열린 아득한 시간. 저 끝에 우리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곳을 걸으려다가 원숭이 조각에 손을 얹어 사진을 찍고자 했다. 가슴의 양감이 잘 살아 골짜기가 깊은 왼쪽의 것과 함께였다. 그곳에 당신을 세우고 오래된 기둥과 함께 찍었다. 내가 할머니가 되어도 당신을 오빠라고 부를래. 부드러운 볼을 만지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원숭이가 모르는 소리를 내며 나를 쳐다보았다. 투명해 질 것인지, 단단해 질 것인지, 그것을 묻는 듯 했다. 단청이 무지개빛으로 작은 창으로 몸을 던질 때. 처마 밑에서 움직이지 않는 색깔이 바닥에 어른어른 비쳤다. 방위마다 나 있는 계단 위의 십이지는 밤마다 궁궐을 돌아다닌다. 그래서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 조각들, 매일 조금씩 닳는 창살들, 마침내 아무런 색도 없이 바닥에 흥건할 오래 된 빛들. 오분이 지났다. 우리가 궁궐을 돌던 일월의 어느 날. 나는 단단해 질 것인지 투명해 질 것인지 생각했다. 당신은 투명한 돌이 되자고 했다. 우리는 내가 되어 입을 모았다. 나는 당신의 움직이지 않는 돌*, 나는 움직이는 돌 그림자. 


*당신의 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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