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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귤 한조각

_봄밤 2014. 2. 21. 21:29



잠시 후 지하철 문이 열렸다. 작은 발이 허공을 찼다. 다음에는 바퀴가 굴렀다. 유모차가 두 대 였다. 마지막으로 부부가 탔다. 서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지하철칸이었다. 아이들의 아빠는 두개가 좌우로 붙은 유모차를 잡고 있었고, 문을 등지고 들어온 그대로 서 있었다. 움직일 만한 곳이 없었으므로 문은 막고 있되 통로는 마련하며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커다란 눈으로 지하철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아니었다. 두 살 쯤 되었을까. 각각 빨강 주황색 패딩을 입고 있었고 작은 얼굴이 모자에 폭 싸여 있었다. 바지 위에 프릴이 달린 치마를 덧 입고 있었다. 아이가 뛴다면 발이 지면에 닿을 때 치마는 위로 폴폴 날으리라. 좁은 유모차에서 두 눈만은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부부는 인테리어 비용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의도치 않게 너무 가까이 있었으므로, 혹은 내가 그것을 들어도 상관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들이 사는 집과 인테리어 비용과, 그것에 500만원을 추가할 것인지 그대로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대해서도 들어버렸다. 부부는 말을 계속이었다. 

 텔레비젼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처럼 예뻤으므로 반대편에 앉은 승객들은 그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나와 옆의 아주머니가 특히 그랬다. 아주머니는 한참을 보다가 애들 참 예쁘다. 혼잣말을 하시더니 넌지시 여자애들같죠? 내게 물으셨다. 나는 네. 여자애들 같아요. 하면서 옆을 슬쩍 쳐다보았고 그 사이 우리는 미소를 교환할 수 있었다. 지하철 역이 잘도 지나갔다. 빨강색 패딩에 쌓여 있는 아이가 조금 더 커보였다. 주황색 패딩의 아이는 답답했는지 모자를 벗으려고 했고, 화장실에 욕조를 치우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던 엄마는 어느새 다가와 모자를 벗겨 주었다. 더 예쁜 얼굴이 드러났다. 갈색의 가느다란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있었다. 동그란 이마와 잘생긴 눈썹도 잘 보였다. 그때, 빨강색 패딩을 입은 아이가 갑자기 오른손을 펼쳤다. 그 안에는 아이의 주먹을 다 차지하고 있던 귤이 있었다. 한조각이었다. 놀랍게도 아이는 귤에 붙은 하얀 껍질을 하나씩 벗기더니, 작은 입으로 가져가 오물 오물 오물, 세 번에 걸쳐 먹었다. 엄마는 그게 아니라며 남편말을 잠시 멈추다가 가방 속에 손수건을 꺼내더니 능숙해서 약간 거친 모습으로 아이의 입과 손을 닦아 주었다. 나는 아이의 손에서 사라진 귤을 쳐다 보았다. 귤을 다 먹은 아이는 작은 손으로 소리가 나지 않는 박수를 두 세번 치더니 '귤, 귤, 귤'이라고 말했다. 내 양 옆에는 아주머니가 앉아 계셨고, 가방 안에서 무엇을 꺼내기 불편하게 좁았으나 나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것으로 안되었기에 노트를 꺼내 그려보고자 했다. 다행히 무지 노트가 있었다. 볼펜이 어디있지...볼펜을 찾으러 가방 속을 한 번 더 열어본 순간 문이 열렸고 아까와 반대로 부부, 유모차, 아이들의 발 순서로 문을 나갔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조그마한 아이가 들어오는 것, 그 아이의 더 작은 손에 귤 한 조각이 들어 있는 것. 펼치기 전까지 그런게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하는 것. 그것을 야무지게도 하얀 껍질을 벗기고 나서 세 번에 걸쳐 먹는 것. 그리고 귤이 사라진 손바닥으로는 박수를 치는 것.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그들의 발이 있었던 자리를 지나왔다. 귤의 탱글탱글한 과즙이 입속에서 갸글갸글 터졌다. 웃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또또? 하고 묻고 싶어졌다. 내일을 보지 못하는 오늘이 적어두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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