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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히아신스

_봄밤 2014. 3. 9. 23:38



장이 계절을 탄다. 봄이라 꽃을 파시는 분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이렇게 바람이 불어도 삼월은 삼월이라는 듯. 작은 리어카에 아직 봉오리 눈감고 있는 프리지아가 한 단씩 묶여 있다. 그걸 열심히 사가는 사람들이 있다. 꽃을 사는 사람들. 많이는 아니고 딱 한 단씩만 사갔다. 구경한 값인 듯 했고, 오랫만에 장이니까 그런 듯 했고, 여유 있어서 사는 꽃이 아니라 봄인데, 바리바리 시커먼 비닐봉투, 그 사이 꽃 한단씩 못 꽂겠나 하는 마음들인 듯 했다. 내가 사지는 못해도 사는 것을 보고 즐거웠다. 저 꽃들이 모르는 집집마다 노랗게 눈이 뜰테고. 삼월은 너끈히 그 향기 진해지는 것으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들어가니 활짝 핀 히아신스가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보니 다 핀 히아신스를 파는 것이 아니라, 구근을 파는 것이었다. 똘망똘망 놓여져 있는 구근들. 색깔별로 칸마다 구분되어 있었다. 똑같이 생긴 뿌리에서 다른 꽃이 피다니, 신기했다. 약속처럼, 그러나 어떤 꽃이 피는지 모르게 섞어서 파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구근은 하늘색 꽃이 피고 저 구근은 보라색 꽃이 피고, 그 옆에 것은 분홍색 꽃이 핀다는 설명. 주인 아저씨는 칸마다 써 있는 설명을 할아버지께 다시 설명하고 계셨다. "이 뿌리에서는 보라색 꽃이 나오고요, 저 옆에 것에서는 분홍색 꽃이 필거예요, 그리고 이건 하늘색 꽃이 피고요." 친절하고 느린 설명, 그러나 할아버지는 답답하다는 듯 다시 물으셨다. "아니 그러니까 여자가 좋아하는 색이 뭐냐고!"


튀긴 오뎅을 먹던 차였다나는 그곳에 일분도 머무르지 않았다. 뒤에서 걷는 사람들과 앞에서 걷는 사람들 사이가 내가 움직여야 할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곳을 지나가면서 저 말씀을 들었다. 한입 베어낸 오뎅에서 기름이 배어나와 입술이 반들반들해졌다. 그곳을 막 지나간 내 등뒤로 히아신스 파는 아저씨의 표정이 비쳤다. 아, 나는 그 표정을 등에 지고 하루종일 얼마나 즐거웠나, 그래서 아저씨는 어떤 색 구근을 파셨을까, 마음에 색 모르는 꽃이 핀다. 다음 장날은 14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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