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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길을 잃는다. 우리의 휠체어는 막혀서 움직일 수 없다. 우리는 잘못된 악센트로 잘못된 언어를 말하고, 잘못된 옷을 입고, 잘못된 길로 몸을 움직이고,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잘못된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산 저 위쪽은 빌어먹게 외롭다. 우리는 오르기를 그만두기로 하고, 우리가 있는 그곳에 새 집을 짓는다. 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로, 음식, 옷, 먼지, 보행로, 발아래 뜨거운 아스팔트, 우리의 목발, 모든 것이 괜찮게 느껴지는 곳으로 다시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또는 우리는 길을 다시 찾아 계속 올라가기로 마음먹지만, 그러면 정상에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말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 우리의 움직임에 자극받아 길에 위장 폭탄을 설치해버릴 뿐이다.... 42p

 

 

...그 이야기들은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비장애 몸과 정신의 우월성을 더 강화한다. 또한 그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인 각각의 장애인을 영감의 상징으로 둔갑시킨다...43p

 

 

...저 산꼭대기를 흠뻑 적신 햇볕이 짙푸른 안개의 수평선을 향해 흘러내리는, 저 정상까지 계속 올라가고 싶다. 그것을 몹시도 원하지만, 두려움이 사랑 바로 옆에서, 물리적 한계 바로 옆에서 묵직하게 울려대고 있기에, 우리는 돌아서기로 결정한다. 울음이 터진다. 내가 하고 싶었고 또 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많았지만 실제로는 할 수 없었던 일로 운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나는 펑펑 울고 나서 일어나 에이드리앤을 따라서 산을 내려간다. 내려가는 건 힘겹고 느리다. 나는 종종 손과 엉덩이를 쓰면서, 그리고 에이드리앤처럼 중력을 잘 활용해서 평평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껑충껑충 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이 무질서한 바위 더미를 내려간다... 49p

 

 

...성취가 장애와 모순된다는 믿음은 무력함과 장애를 짝지어 놓는다. 이는 장애인들에게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한다. 비장애인 세상은 우리를 시설에 가둔다. 독립적으로 살아갈 자원을 박탈한다. 우리를 신체적, 성적으로 학대하는 경우는 경악할 정도로 많다. 우리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어도, 비장애인 세상은 우리의 언어장애, 절뚝거림, 산소호흡기, 사작장애 안내견을 무능력의 상징으로 이해해서 고용을 거부한다. 엄청나게 비싼 대가다...54p

 

 

...극복에는 강력한 흡인력이 있다. 집에 돌아온 내게 친구들은 "하지만 넌 우리가 만취했을 때보다 잘 걷잖아"라고 말했다. 열정적인 등산가로 노스 캐스케이드의 아주 높은 곳에서 주말을 자주 보내는 내 자매는 "장비를 잘 갖추고 충분히 연습하면 넌 애덤스산을 오를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를 모르는 한 여자는 에이드리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친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해.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만큼 열렬히 원하기만 하면 돼."에이드리앤과 다음 여행은 화이트 산맥으로 가자고 얘기하기 시작할 무렵, 나는 생각했다. '지팡이를 사용하고, 맑은 날에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아마 나는 애덤스산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거야.' 나는 한 번도 "돌아서기로 선택하길 잘한 거야"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 산은 나를 놔주지 않을 것이다...55p

 

  

...젠더는 장애에 다다른다. 장애는 계급을 둘러싼다. 계급은 학대에 맞서려 안간힘을 쓴다. 학대는 섹슈얼리티를 향해 으르렁댄다. 섹슈얼리티는 인종 위에 포개진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한 사람의 몸 안에 쌓인다. 정체성의 그 어떤 측면에 대해서든, 몸의 그 어떤 측면에 대해서든,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미로 전체에 대해 쓴다는 뜻이다. 그걸 알고 있지만, 여전히 이런 질문이 남는다.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아마도 내 하얀 피부에서, 억센 붉은 머리에서, 피어싱을 한 왼쪽 귀에서, 중심에서 살짝 기울어져 오른쪽보다 왼쪽이 더 위로 솟은 어깨에서, 떨리는 손에서, 정맥을 따라가면서, 근육이 잘 발달된 다리에서 시작할 수 있겠다....글을 시작하는 방법은 아주 많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내가 피부 아래로 다다를 수 있을까?...248p

 

 

...우리는 웃는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자와 남자에 대한 너희 정의는 썩었어. 너희 그 이분법은 엄청 구려. 여기 이 모든 찬란함 속에 우리가 있어- 남성, 여성, 인터섹스, 트랜스, 부치, 넬리, 근육질, 펨, 킹, 안드로진, 퀸.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여성으로 존재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고, 다른 이들은 남성으로 존재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아고 있어.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존재할 새로운 길을 내고 있어. 너희에겐 우릴 부를 대명사조차 없잖아."

...259p

 

 

...나는 떨리는 내 손으로 돌을 품어 올리고 싶다--뇌병변으로 인해 떨리고, 욕망으로 떨리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공포로 떨리고, 이게 내 몸이 움직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떨리는 이 손으로, 그리고 내 체온으로 부드럽게 돌을 데워주고 싶다. 내가 전에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함부로 다루고 싶지 않다. 나는 소녀도 소년도 아닌 트렌스젠더 부치로서 세상에 들어가고 싶다--내가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와는 다르게 젠더화된 존재로서. 그땐 단순히 "이게 내가 여자로 존재할 방식이구나"라고 생각했고, 여자란 단어가 너무도 작아지는 날이 오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278p

 

 

 


발췌한 문장 중 중요한 대목이 빠져있다. 저자 일라이 클레어를 이루는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인 노동계급에 대한 것이다. 시적인 문장들. 피부 아래로, 뺏긴 자신의 몸을 되찾기 위한 사유의 여정이 팽팽하면서도 아름답다.

 

 

 

저자는 몇 가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아주 어렸을때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그것도 친부로부터). 이것에 대한 막대한 분노가 있었을텐데 이 책에는 거의 없다. 그보다 자신이 처했던 계급과 노동을 살피는 식이다. 그래서 이후 나의 몸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찾아가는지에 대한 글이 침착하고 아름답다. 장애에 관한 당자사성이 있으면서 이토록 깊게 내려가는 사유와 힘, 읽는 이를 아프게 만드는 글을 보지 못했다. 그녀의 성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도 잘 읽힌다. 장애, 퀴어, 계급에서 자신의 몸으로 살기. 매우 잘 읽히며,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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