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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인 생활에 대해서1

_봄밤 2022. 10. 14. 15:09

엉망인 생활을 고백하면 엉망인 생활이 남는다. 

 

어제 아침 일찍 아빠에게 문자를 했다.

 

아빠에게 연락한 것은 한 달 반만이었다.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이다. 뒤늦게 합류하는 동생이 터미널에 도착할 시간이 변경되었음을 누차 아빠에게 말하는 중이었다. 동생은 삼십분 늦을 거야. 벌써 세 번째 말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오랜 시간 운전에 지쳤을 아빠를 걱정해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벌써 나가려고 했다. 시간을 알려주건 말건 전혀 염려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 따위가 감히 자신을 통제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나가겠다는데 네가 대체 무슨 상관이냐? 는 것이다. 그게 그 날의 전말이었다. 그 뒤의 일을 말하지는 않겠다. 나는 그날 가족과 함께 여행 하기를 그만두었다. 

 

내가 아빠의 운전을 걱정하는 방법은 여러가지 있었다. 고맙다고 말하는 것.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걱정은 따뜻한 목소리로 말할 때만 걱정이 된다. 

 

걱정을 이 따위로 하게 된 것은  2주 전부터 화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빠에게는 평생 화가 나 있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른답게 2주치만 소급해서 말했다. 그날 아빠는 엄마의 생일에 참여하지 않았다. 요약하자면 친구들과 놀았다. 술을 먹으면서. 그리고 그것을 대단한 모임인 것처럼 둘러댔다. 그러기 위해 신부님과의 저녁식사까지 끌어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게 뭐 얼마나 대단한 자리였겠는가. 그 자리에 예수님이 참석했다고 해도 그는 아빠의 등을 두드리며 정신차리라며 집으로 돌려 보냈을 것이다.

 

신부님이 저녁에 참여한다는 함께 저녁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였으나, 결국 신부님 없이 저녁을 했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것이 엄마의 생일을 얼마나 초라하게 만들었는지 이야기 했다. 평생 아빠가 받았던 화려하고 대단했던 생일상에 대해서 상기시켰다. 모두 엄마가 전날부터 준비했던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당신은 의리가 없어.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도리를 해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엄마 한 사람에게만 잘하면 된다. 동시에  늦었지만 하루종일 태어주어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남이었으면 당연히 감사하다고 했을 말을 정작 아빠에게 하지 않았다며. 

 

나는 왜 화가 났을까. 솔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해지는 일은 언제나 두렵다. 나는 솔직히 이렇게 생각해,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어.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때로 상대를 아프게 하는 일이었고, 나의 생각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솔직해 지는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그렇게 용기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심지어 솔직해지면 약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건 내가 갖고 있는 패를 모두 보여주는 일 같았다. 그렇게 되면 내가 불리해지는 건 아닐까, 하지만 관계는 게임이 아니고 이길 필요가 없다. 그냥 내 패를 모두 보여줘도 된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상대방이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될 수 있는 일이다.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는 나를 잘 알려주는 일이 필요하다. 

 

진작에 솔직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나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진심을 알아주기를, 두려움을 알아주기를, 그것으로 말미암은 화를 알아주기를 바라며 그에게 전가하지 말았어야했다. 그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내 마음을 조금도 짐작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냥 화가 난 사람이 되었다. 그것도 화가 자주 나는 사람이. 잘 말해주면 어른답지 못했고, 못돼게 말하면 사람답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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