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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분

_봄밤 2022. 10. 11. 17:23

그와 만난 시간은 지금까지 총 십오분 정도 되었다. 3주 만났고, 그는 나 같은 이를 어떤 날 오전에만 120명 마주한다. 차트의 이름과 생년월일로 겨우 가늠할 것이다. 할애된 시간이 많지 않아서 최대한 간략하게 전할 수 있는 내용을 전날 메모장에 정리하고 잔다. 중요한 것부터 순서대로 말이다.  

 

간략하게 말한 것을 다시 간략하게 말하자면, 일주일 동안 괴로웠지만 지금은 괜찮다는 얘기다. 딱지가 진 자리를 보여주었다. 

 

진료가 다 끝나가고 있었다. 진단서를 받을 수 있을지 여쭸다. 휴직을 하려고요. 회사가 너무 멀어서... 힘이 든다는 얘기였다. 좋아지고 있지만 몸은 부하를 받고 있다. 여러가지로 지쳤는데, 그게 어떤 부피로 있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약에 관해서라면 그는 알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말했는데, 그는 손뼉을 치더니 아주 반가워했다. 잘 됐다며 한 달은 쉴 수 있냐며 좋아했다. 

 

'한 달 까지는 아니고요...' 3주 정도 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도 가봐야 안다.

 

진료실을 나오고 다시 대기시간, 수납을 하고 약을 타고 병원을 점점 떠나서 일터다. 왜 그 손뼉이 왜 이렇게 고마운지 모르겠다. 안타까움이나 안쓰러움, 안됐음, 그런 말들이 아니고 혼내거나 겁을 주거나 하는 말이 아니고,

 

내가 어떤 밤을 어떤 낮을, 어떤 아침을,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아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좀 쉰다면 내가 좋겠네. 마음이 좋겠네.

 

 

사실 그가 그렇게 좋을 건 그다지 없다.

그와 나는 이제 겨우 15분 만났고, 이제 2주 뒤에 보기로 했다. 

 

 

+

약사는 갸우뚱했다. '항생제가 없네요. 아픈곳이 목인가요 어딘가요?'

나는 거의 우는 얼굴로 말했다. '...항생제는 있어요.' 그러자 약사는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하며 약을 주었다. 기본적인 약이라 이천 오백원 밖에 들지 않았다. 언제라도 내주는 약으로 말미암아 아마도 대수롭지 않은 병변일 텐데, 약을 받는 나는 거의 무너져 가고 있었다. 왼쪽 귀가 너무 부었다. 그렇다고 영원히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짧으면 1주일, 길면 2주일이면 다시 원래의 귀가 될 것이다.

 

나도 안다.

 

이비인후과 의자는 우주선 의자인 양 매우 높고 으리으리한데, 그 높은 의자에서 한 발씩 내려오면서 눈물이 났다. 왜냐면의사가 아주 다행이라는 듯 귀 안은 이상 없고 좋다며 힘주어 말했기 때문이다. 그 말에 더 눈물이 났는지도 모르겠는데, 동생은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뭐가 안좋은거냐고 재차 물었지만, 소염제와 진통제만 받았을 뿐이다. 별로 해줄 건 없고, 이 약들이 너를 도와줄텐데, 너무 걱정 말라는 얘기 같았지만, 진료나 처방이 내가 우는 것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너무나 조용한 대기실에서 저 사람이 운다를 모두 알게끔 울음이 섞인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평범한 처방에 좋은 말을 듣고 나왔다. 

 

나도 알지만, 아는 것이 아픈 것을 언제나 이해하거나 달랠 수는 없다.

그게 나 자신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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