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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롭게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써본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거짓이라도 일단 써보고 싶다. 잘 지나고 있다. 

 

 

늦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9시쯤 주무시는데 왜 이렇게 늦게 전화하셨지. 짜증은 거기서부터였을 것이다. 잠을 못잘텐데. 긴급한 대화도 아니면서 엄마의 잠이 줄어드는 것이 싫다. 엄마는 아마도 내 목소리를 듣고 싶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둘은 이미 상충되며, 나는 말하지 않았지만 별로 반갑지 않게 전화를 시작한다. 예상처럼 별 다를 것 없는 내용의 전화가 이미 짜증스럽다. 

 

대화는 이런 식이다. 음식에 알러지가 없다고 전화 할 때마다 말했지만, 엄마는 그래도 조심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잘 가린다고 대답하는게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음식 알러지가 뾰족하게 없으며- 크게 조심해야 할 음식이 없으며- 그렇게 때문에 뭐든 잘 먹고 있다는 이야기는 다시 염려로 돌아온다. 나는 왜 엄마의 전화가 짜증날까. 아마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사랑하지 않을까?

 

질문이 잘못되었다. 왜 사랑하지 못할까? 

 

시간이 좀 지나 퉁명스러운 마음이 좀 풀어져 이야기를 듣는다. 요새 본 드라마 이야기, 성당 간 이야기. 엄마는 평범한 경험과 말을 신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만의 무엇이겠지만 그 경험과 인상이 이미 일상적인 경우가 많은데서 생기는 간극 같은 게 있다. 나는 이런 경우에는 솔직해서 속아주지 못한다. 그건 신나지 않기 때문에 신나게 받지 못한다. 

 

그러다가 내가 대학병원에 다니는 게 좋다고 말하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로 결정한 것이 너무나 좋다고 하신다(이것도 전화 할 때마다 말씀하셔서 벌써 여러차례다) 오늘은 덧붙여, 언제나 나의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네가 어려워서 묻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지금이 되어버렸다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지겹다고 생각한 대화 속에서 속절없이 당황하고, 눈물이 쏟아지고, 절대 들킬 수 없다.

 

엄마는 변덕이 많았지만, 대체로 솔직하다. 엄마는 솔직하게 다정하다. 다른 사람에게는 모르겠으나 자식들에게는 다정을 아낀 적이 없다. 나는 엄마가 그것을 아껴서 나누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렇게 애정을 받고 자란 사람이 다정하지 못한 것은 왜 그런걸까. 받으면 저렇게 좋은 것. 별것 아닌 대화에서도 따뜻해 지는 걸 좀처럼 주지 않는다. 다정하면 죽기라도 하는 건가. 그런걸 생각할 시간에 나는 수영가고 배구하고 뮤지컬 보러간다. 그게 최고라도 되는 것처럼. 

 

적당히 거리가 있는 관계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아닐 것이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어려움을 겪는다. 유지가 어렵고 갈등을 잘 풀지 못하며, 어쩌면 그 자체를 어려워하는 것도 같다. 다시 생활은 순조롭다. 배구와 갈등을 겪을 일은 거의 없고, 뮤지컬과 속상할 만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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