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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루스 리스터의 책. 반빈곤 활동가이자 빈곤 연구자. 영국 노동당 상원의원. 

갈라파고스에서 출간 되었다.

 

이 책은 빈곤의 정서와 빈곤의 권력에 대해 파고들어 가난의 '실체'가 비로소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주석과 인용이 굉장히 많아 이 책을 시작으로 빈곤에 관한 여러 연구가와 다른 책의 목록을 알 수 있다. 

 

빈곤과 장애에 관한 책을 지속적으로 찾아보고 있다<가난 사파리>등. 당사자성이 있는 책은 언어가 생생할 수는 있어도 개인적인 측면에 머무르는 아쉬움이 있는데 이론서나 연구가의 책은 생생함은 덜 해도, 전략적이다. 빈곤이 처한 사항, 진정한 문제, 그 진정한 문제가 이중 삼중으로 있는 상태를 상세하고 끈질기게 연구의 언어로 서술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발판, 즉 언어를 마련한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1장 빈곤의 정의
2장 빈곤의 측정
3장 불평등, 사회적 범주, 서로 다른 빈곤 경험
4장 빈곤 담론: 타자화에서 존중까지
5장 빈곤과 행위주체성: 견뎌내기에서 조직화까지
6장 빈곤, 인권, 시민권
나가며: 개념에서 정치로

 

이중에서 4장~5장이 탁월하다. 거의 모든 쪽을 접은 것 같다. 

 

찰스 테일러가 주장하기로, 인정은 "단순히 타인에게 예의상 받는 것이 아니다." 오직 타인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핵심적인 인간의 필요'다. (..) 우리가 보았듯이 빈곤층의 존재가 드러나는 경우는 대체로 부정적인 측면을 조명할 때 뿐이다. 따라서 '지식의 병합'사업 보고서에서는 빈곤층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51

 

 인간으로 인식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이것은 비난이 아니다. 궁금해서 묻는 말이다. 일반 사람들이 그 방법을 정말로 모른다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 구걸하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하자. 그는 신발을 신지 않고 있으며, 종아리 아래로 퉁퉁 부운 발을 보이며 곧 왼쪽 발을 잘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개인이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일반인은 거의 없다. 이렇게 큰 문제를 방금 알게 된 일반인이 얼마나 도울 수 있을까? 

 

그가 요청하는대로 돈을 줘야 할까?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그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수도 있다. 역무원에게 말해야 하나? 역무원에게는 지하철에 환자가 나타날 경우 케어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근처 병원에 전화를 해야할까? 우리가 막연히, 작동하고 있으리라 기대하는 보장 시스템이 망가진 결과일까? 그렇다면 어디에 그가 나타나야 했을까? 그가 익명에 기대어 각자의 행선지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일까? 그에게도, 나에게도? 이동하는 사람들은 다음 역에서, 다다음 역에서 내린다. 우연의 순간에 그를 도울 방법을 알고, 힘을 내 도우며 자신이 가려던 길을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자기가 갈 길을 간다. 

 

그가 구체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이 사회에서 인간으로 가시화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존 롤스는 자존감이 '아마도 가장 중요한 기본적 재화'일 것이라 말했다. 센은 자존감이 핵심적인 기능화라고 판단했으며, 그 중요성은 누스바움이 더욱 깊이 있게 조명했다. 누스바움은 '자존감을 지키고 굴욕당하지 않을 사회적 기반, 타인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을 가능성'을 인간에게 중요한 기능적 역량의 목록에 추가했다. 153

 

'자존감을 지키고 굴욕당하지 않을 상호적 기반, 타인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을 가능성'

 

빈곤은 곧 실패를 뜻한다. 복지 급여 수급을 '의존성'이라는 낙인과 동일시하는 태도가 자긍심의 껍질을 또 한 겹 벗겨 낸다. 사실 이런 결과는 일부 '하층민' 이론가가 의도하는 바다. 찰스 머리는 '양심적인 어머니들'이 하는 역할처럼 무급으로 이루어지는 일의 사회적 기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장기 복지 수급자는 사회의 '실질적인 기여자'가 아니므로 "[그들의] 존엄을 인정하려고 어떠한 시도를 한다 한들 당사자는 자존감을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154

 

:: 빈곤은 곧 실패를 뜻한다. 이 문장만큼 확실한 뜻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빈민'에게 있어서는 ['다르게' 보다는] '똑같이' 존재할 권리를 의미한다. 다르게 보이는 데 대한 두려움은 어린이의 빈곤 경험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난다. 155

 

::똑같이 존재할 권리. 유독 어린이에게서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이 마음 아프다. 

 

...행위주체성이 '관계적'이라는 데이비드 테일러의 "행동할 역량은 단지 개인적인 자원이 아니라 맥락적인 자원이며, 타인의 맥락, 그리고 타인과의 맥락 속에 자기를 끌어다 놓을 수 있는 능력에 좌우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164

 

이 책의 목적에 비추어 중요한 부분은, 그러한 선택이 사람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결과적, 전략적 의의이다. 예를 들어 임금노동 여부를 결정하는 데는 전략적인 행위주체성이 필요하고, 그 결과 살림을 꾸리는 데 필요한 일상적인 행위주체성이 생긴다. 일상적인 행위주체성은 개인의 생애 경로에서 중요성이 덜하지만, 빈곤을 경험하는 방식을 좌우한다. 또는 개인적인 행위주체성과 정치적이고 시민적인 행위주체성이라는 구별도 가능하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는, 개인적인 행위주체성이란 넓은 범위에서 본 개인의 생계 및 대응 전략('견뎌내기'나 '헤쳐나가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정치적 행위주체성은 저항 행동을, 시민적 행위주체성은 전반적인 변화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대항하기' 또는 '조직화하기')를 동반한다. 165

 

::행위주체성을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행동할 역량은 단지 개인적인 자원이 아니라는 점. 그것은 언제나 맥락적이라는 점. 관계적이므로 타인과 늘 연관된다. 즉 타인에 의해서 행위주체성이 더 늘어날 여지, 혹은 축소될 여지가 있다.   

 

빈곤층을 갉아 대는 공포와 불안은 삶의 핵심 요소들에 대해, 그리고 자기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할 역량이 없다는 데서 발생하는 권력 부재의 결과물로서, 단지 '일상적인 불안정'만이 아니라 심각한 '존재론적 불안정'을 반영한다. ...불안정은 그 자체로 행위주체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172

 

::심각한 존재론적 불안정. 

자기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할 역량- 여기서 나는 '병'을 떠올린다. 

 

실제로 빈곤층이 '부유한 가족들과 비슷하거나 더 치밀하게' 재정을 관리한다고 밝힌 연구가 있다. 그래도, 데이비드 매크론은 하루하루를 '견뎌내는'데 그치는 '무계획자'와 장기적인 전략을 활용해 '꾸려 나가는' '계획자'를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매크론은 이 둘 사이가 '아주 미세한 선'을 기준으로 구분되며, 관리 능숙도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견뎌내기'만 하는 데도 다소 복잡하고 몸에 깊이 밴 습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견뎌내기'만 하는 데도 다소 복잡하고 몸에 깊이 밴 습관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생존한다는 것, 부족한 소득을 솜씨 좋게 관리한다는 사실 자체를 만족감과 자부심의 원천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자체가 개인 자원이 된다. 179

 

빈곤 자체가 사회관계망 형성과 유지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며, 되갚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물질적 도움을 구하기도 꺼려질 수 있다. 181

 

되갚기가 어려운 경우 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더 근본적으로, 특히 극심한 불안정 상태에서 나날이 닥쳐오는 견뎌내기의 부담에 시달리다 보면 미래를 '연 단위가 아니라 시간과 일단위로만' 보게 될 수 있다. 티라도의 표현으로는, "빈곤은 암울하여 멀리 내다볼 능력을 앗아 간다." 

 

::아아. 견뎌내기의 부담에 시달리다보면 내다볼 능력이 사라진다. 

 

"빈곤은 장기적 이익에 '쏟아 낼' 관심이 너무나 부족하고, 자기 통제 '근력'이 한계에 달한 절박한 상태"다. 204

 

이 밖에도 빈곤층이 공유하는 범주 정체성의 발달을 가로막는 수많은 요소가 있으며 이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첫째, '빈민'이라는 범주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정체성의 일부조차 되지 못하거나, 성별, 양육자의 신분, 민족, 연령과 같은 다른 정체성에 비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을 수 있다. 빈곤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지위를 의미한다. 권력을 더 많이 가진 타인(정치인, 전문가, 언론, 연구자)이 부여하는 '빈민'이라는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그 꼬리표 때문에 개인적인 주관과 정체성을 잃는다. 

 

::빈곤층이 공유하는 범주 정체성이 약한 이유. 개인 정체성의 일부조차 되지 못할 가능성. 그리고 대부분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데 있다. 누가 자신의 정체성을 빈곤이라고 말하게 놔두겠는가? 

 

빈곤층은 "자신이 빈곤 상태에 놓인 존재로만 표현되기를 원치 않는다." '빈민'이라는 말에 담긴 부정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것을 포함하는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추구할 가능성은 낮다. 210

 

옥스팜은 빈곤을 "기본적 인권을 행사하지 못하거나 자기 삶의 어떠한 측면도 사실상 통제할 수 없게 만드는 권력 부재 상태"로 개념화한다. 권력은 개인의 빈곤 경험과 그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245

 

::빈곤은 즉, 권력의 부재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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