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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과 한영인의 편지 모음집이다. 이메일로 나누었지만 이메일도 오늘 같은 시대에는 편지처럼 여러 형식을 필요로 한다. 

 

이들은 제주도에서 살면서 우연한 기회에 만나 친구가 되었다. 우연하게 만났지만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을테다.

 

"저는 사람을 잘 사귀지 않는 데다가, 

나이 들어 사람을 새로 사귀는 건 더욱 어렵습니다. 

한 형(그리고 지민)은 제가 가장 마지막으로 사귄 친구입니다. (다시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제게는 그럴 생각이나 열정이 없습니다.)"

 

라는 장정일의 고백은 이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보여준다. 

 

이들은 84년생, 62년생으로 나이차이가 아니라 세대차이가 난다. 84년생에 가까운 나는 그의 이야기에 좀더 수긍이 되었지만 글의 짜임새나 유머의 타율은 아무래도 비할 수는 없다. 제주도의 밤바다는 어떠려나. 그런 생각이 드는 글. 이 편지에서 다룬 책을 따라 읽으면 더 두껍게 불어날 이야기들이다. 인사야 편하게 나누지만 이들이 이메일을 쓰기 위해서 뒤집어 찾은 책들과 문장을 정리한 시간을 생각하면 아득하다. 글을 쓰는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이 편지가 실제로 오간 1년 정도의 시간을 앉은 자리에서 훑어볼 수 있는 기쁨이라니. 이런 대화라면 언제라도 뒤따라 읽어도 좋을 것이다. 

 


 

뒤늦게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2001)를 비디오로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작중의 유지태는 음향 녹음 전문가로 등장하죠. 저는 그의 직업이 음향 녹음 전문가라는 것을 알고부터 어떤 녹음 장비가 나오는가에만 신경을 쓰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입이 벌어지는 광경이 나왔습니다. 그가 들고 다니는 기계가 무려 나그라일 줄이야. 나그라는 스위스에 본사가 있는 초일류 오디오 브랜드죠. 그러니까 한국은 촌놈 티를 벗었네요.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음향 녹음 전문가라는 주인공이 소니나 리복스 제품을 들고서 얼쩡거리면 바로 테크니컬 감점이니까요. 

(장정일)

 

->다시 보게 되네. 사랑의 찌질함과 가난한 집 마루만, 맨투맨만 생각나는데 그는 초 일류 오디오 브랜드를 다루는 전문가였다.

 

(중략) 하지만 '힙'의 세계에서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를 겁니다. 거기에서 작가는 값비싸고 좋은 와인 리스트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내추럴와인을 등장시킬 테니까요.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와인의 세계와 당최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내추럴와인의 세계는, 같은 와인이라고는 하지만 완전히 다른 문화적 기호에 속해 있습니다. 아마 내추럴와인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그런 수백 만 원 짜리 와인의 내력과 풍미는 관심 밖의 일일 겁니다. 클래식한 와인 애호가라면 내추럴와인에 치를 떨며 증오할 테고요. 모던함이 문제가 되는 세계에서라면 '하이'와 '로우'를 논할 수 있지만 힙에는 고저도 장단도 없지요. 부박하다면 부박한 세상이 된 것입니다. 

(한영인)

 

->한영인의 좀더 요새 세상을 잘 읽어, 설득력 있는 비평을 한다. 상표나 브랜드가 아닌 취향의 차이가 만드는 어떤 것. 요샛것들 사이에서 유구한 브랜드들은 힘을 잃고말지. 

 

(중략)하지만 제가 지난번에 드린 편지에도 썼듯 죄책감이 고백으로 이어지는 장면 자체가 특별한 건 아닙니다. 기독교적 전통과 무관하게 인간은 자꾸 무언가를 고백하고 싶어하는 존재이고, 고백이라는 '죄'는 고백이라는 형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내용일 테니까요. <점원>에서 제가 흥미롭게 느꼈던 것은 그 '고백'이 실패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프랭크는 나중에 보우버에게 자신이 그때 강도짓을 벌였던 사람 중 하나였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보우버는 프랭크가 고백하기 저네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죠. 이렇게 되면 일이 꼬여버립니다. 고백의 힘은 듣는 이가 그 고백을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느냐에 달려 있는데 듣는 자가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으면 김이 확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죠. 

(한영인)

 

->고백이 실패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사람들은 허구나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그것만큼 관념도 좋아합니다. 어느 시대나 항상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관념에 목마릅니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소설은 법이나 과학이 함부로 제시할 수 없는 관념을 자유롭게, 그리고 사회질서를 크게 파괴하지 않고 시험해볼 수 있게 합니다. 사회는 그런 시도로부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이득을 보죠. 저는 최인훈의 <광장>이 그랬던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소설이 뭐 그렇게 재미있나요? <광장>이 당시 충격을 준 이유는 그리고 아직까지도 다시 읽을 수 있는 책 즉, 고전이 된 이유는, 주인공 이명준이 남도 북도 다 거절하고 중립국을 찾아간다는 발상 때문이었죠. 저 선택이야말로 좌우 이념에 시달리고 한국전쟁으로 고통받던 당대 한국인들이 가장 필요로했던 관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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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설에서 관념과 싸우거나 관념을 캐내고 세우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으면 더 읽기가 싫어져요. 그래서 저 같은 독자는 소설 아닌 것에서 소설을 보죠. 예컨대 미셸 푸코를 흥미진진한 소설로 읽는 식이에요. 그러므로 저는 소설의 적이 아니라 범소설주의자인 셈이죠. 소설을 쓰려는 사람들은 관념을 창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장정일)

 

->이 부분은 정말 탁월하다고 느껴졌다. 사실 그 소설이 뭐 그렇게 재미있나요? 에서는 희열까지 느껴진다. 나도 비슷한 이유로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다룰 때 훨씬 흥미진진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빚을 청산하지 않고는 새로운 시작을 전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훈은 동료들을 죽이고 자기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무한한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느끼지만 자신이 진 빚에 대해서는 일말의 죄책감도 지니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기훈이 끝내 살아남은 진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본에 대한 죄책감을 인간에 대한 죄책감으로 전환시킨 인물인 거죠. 

(한영인)

 

-><오징어 게임>을 리뷰하는 한영인. 빚에 대해서 죄책감을 지니지 않는 인간, 게임이 끝난 후 기훈이 엄청난 돈을 받게 되지만 빚을 갚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했다. 하하. 빚에 대한 죄책감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새로운 해석.

 

 

 

도서의 제목은 장정일의 편지 내용 중에서 왔다. 절레절레. 모든 걸 설명하면서 궁금하게 만드는 제목. 이보다 더 좋은 제목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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