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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제 아주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그가 일기를 쓴 일이 기뻐 기록한다. 일기를 쓰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기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의 전망이다. 오늘을 단조롭게 기록하는 데에도 나아질, 내일에 대한 기대가 필요하며, 그것은 반드시 희망을 몰고 온다. 그리고 아주 나중에야 알게된다. 그때 내가 이렇게 움직이고 있었구나... 미래의 내가  되기 위한 어떤 밑작업. 매일이 거의 비슷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때는 잘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뭐 아는 체 하지만 나도 모른다. 언젠가 뭐가 되겠지. 누구나 뭘 쓸 수 있고 내 일에 대해서 내가 말하는 게 그냥 재미있다.

 

우리는 많은 일상을 공유하게 되어, 내 일기가 그의 일기와 거의 다르지 않은 지경이 되었다. 내가 일기를 복기해주었다. 그날 우리는 만두를 먹었어요. 저는 유난히 길을 헤맸어요. 당신은 노심초사 했습니다... 흡사 엄마가 불러주는 대로 개학 1주일 전에 부랴부랴 여름방학 일기를 몰아쓰는 것 같았지만, 일주일 동안 당신은 적을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발견했다. 나는 일기를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내가 불러줬으니 보내주지 못할 것은 없을 것이다. 순순히 보내준 일기에는 그의 필체가 있고, 당신만의 이야기도 있어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문어구이' 같은 단어가. 그날 문어구이를 먹었구나. 

 

그러다가 종이접기 얘기를 해준다. 토끼랑 거북이를 접을까봐요. 올해가 토끼의 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종이접기'만 보여도 내게 공유를 해주는데, 글감이 되면 좋겠다 싶어서 인것 같지만 대부분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충분하다. 그가 보내준 영상에서 왠 불량해 보이는 청소년들이 잔뜩 구겨진 종이를 들고 욕을 하며 종이접기를 거의 포기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종이접기는 이를테면 계단 접기로, 무엇을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복되는 밑작업이 매우 필요한 접기였다.

 

"제가 생각하기에 종이접기는 크게 2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몇 단계 별로 모양이 크게 바뀌어 완성해 나가는 종이접기, 또 하나는 90퍼센트의 거의 동일한 반복잡업을 통해 마침내 위대한 것을 완성하는 접기. 나는 주로 전자의 종이접기를 한다. 그게 재미있고 시간도 덜 걸리며 뭘 만들었다고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자는 반복이 지겨워 중간에 포기하기 쉽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반복작업은 좀처럼 변화가 없어서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지금 잘 하고 있는지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저 아이들은 그런 종이접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치고, 재미없죠. 하지만 일단 인내하고 끈질기게 따라가면 마침내 엄청난 걸 만들 수 있어요."

 

라고 말하니 그는 이야기를 다 듣자 그것을 글로 써보라고 했다.

이 이야기가 재미있나요?

인생의 무엇에 빗댈만 한 것 같네요.

 

우리는 만난 지 6개월 정도 되었다. 나는 이제 미친 것처럼 행복하거나 감격스럽지는 않다. 그는 어디 가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당분간은, 그에게 정주할 것이다. 그는 부지런히 요리 하고 머리를 묶고 고양이를 돌보고... 나의 허황된 마음을 알아본다. 그럼에도 예쁘다고 말해주며 내가 부르는 노래에 언제나 웃는다. 내게 글을 계속해서 쓰라고 말한다. 이렇게 글을 써보라고 하는 사람을 중2 때 국어 선생님을 제외하고 처음 본다. 그 선생님은 내게 '시'를 쓰라고 했다.

 

'밤아 너는 시를 써야한다.'

말이되나? 나는 그때 시라는 걸 본 적도 없었다.

 

그는 내 말에 언제나 웃는다. 아주 만족스럽다. 나는 그의 얼굴만 봐도 웃는다. 그도 만족스러울까? 나는 웃기는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몇 명만 웃기고 싶다. 그는 기꺼이 병원에 함께 간다. 거기서 다른 아픈이들을 보고 아픈이들 중에 나를 기다려 진료실로, 주사실로, 마침내 병원 밖으로 함께 한다. 계속 전화를 하고 싶어서 잠이 들고 싶지 않다. 그는 시간을 알려준다. 11시에요. 11시 30분이에요. 이제는 정말로 자야죠. 감정들. 여기 바닥에서 잘테니, 내가 볼 수 있는 근처에서 잠을 자주었으면 한다. 한 줄이나 두 줄짜리 일기를 쓰고 당신도 스스륵 잠이 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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