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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레베카 솔닛

 

"사람들은 내게 그런 일은 내 상상이라고, 혹은 과장이라고, 내 말은 믿을 만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렇듯 나를 표현하는 능력과 세상을 해석하는 능력을 불신받는 것은 내가 존재할 공간을, 자신감을, 세상에 나를 위한 장소가 있을 테고 내게도 남들이 들어볼만한 말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갉아먹는 요소였다.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을 때는 나도 나를 믿기가 어렵다. 그래도 끝내 자신을 믿는다면, 그것은 다른 모두와 대립하겠다는 뜻이다. 둘 중 어느 쪽을 택하든 나는 미칠 것 같을 테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게다가 누구에게나 그럴 근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고 진실도 내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내 것일까?"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중에서

글을 읽기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지. 그게 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냐고. 언어를 찾은 기쁨에 미칠 것 같지. 그래서 그녀를 좋아하는 것이다. 나도 몰랐던, 그러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서. 

 

 

<아무것도 안 하는 애인>, 박라연

 

너와 그는

 

네가 참외라면 행복이라면

너와 그는 생년월일이 같을지도 몰라

너의 향방을 시시각각 아는 그의 눈 눈보라

비 비바람 참 신묘하기도 하지 어디선가 잠 못

 

이룰 때 몸이 굵어지거나

씨앗 떨굴 때 수명이 좌우로 흔들릴 때 그의 순간도

잠 못 이루거나 굵어지거나 여물어지면서

흔들렸던 것

 

현재를 죄다 뽑아내고 다른 나무와 호수와 꽃을

넣어봐 그거 너보다 더 좋아할걸?

 

너와 그는 같은 순간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해

가깝게 멀게 오른쪽과 왼쪽이 되어

느끼는 사이라면

 

너는 삶이고

그는 죽음이라면 네가 그에게서 필사적으로

빠져나올 때만 삶이라면

 

그에게 항복하는 그 순간

참외인 너는 행복한 너에게 씹히면서

그를 건너는 중일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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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사는 일도 무지 줄어들었다. 제목만 보고 산 시집이 얼마만 인지. 애인에게 보여주고 함께 웃었다. 자신을 아는 애인이랄지. 저어하는 마음 없이 웃어넘긴다.

 

느낌표로 시작하는 첫 행들이 많아 기운이 씨다. 이 시로 말할 것 같으면, 은근히 참외와 행복을 비슷한 글자 마냥 가져다 두는 첫 구절. 마침내는 항복으로 끝나는 말들. 사랑에 관한 시겠지 짐작하며. 1연이 가장 좋다. 말장난이 거듭 의미를 단단하게 하는 것도 좋고, 가벼웁게 풍경을 그려내는 것도 좋고. 참외를 좋아하기도 하고. 참외는 여름이기도 해서:

 

총평: 올해 책을 굉장히 많이 안 샀다. 이럴 수가.

점점 소설을 읽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들, 소설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약하고도 강한 사람들을 못 만난지 오래되었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올해는 <혼불> 과 <토지>를 마련한 해이기도. 둘다 당근에서 구입. 이제 읽을 일만 남았다!

 

 

올해의 영화: <헤어질 결심>

올해 본 영화가  ott를 다 합쳐도 5개가 되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만 두 번, 극장에서 보았다. 한 번 보고 그 다음을 바로 약속했지만, 두 번째 볼 때는 첫 번째의 감동의 반으로 만났다. <헤어질 결심>에서 아쉬운 것은 그것 뿐이다. 

그 밖에 본 영화는 <결혼 이야기>가 있다. 

 

올해의 드라마: 올해의 드라마는 '우영우' 그리고 '재벌집 막내아들'

특별한 사람을 그려준 배우와, 주변의 따뜻하고 다정한 인물들에게 감사하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다른 드라마와 다른 이유는, 등장인물 모두 자신의 욕망을 갖고 발화한다는 점이다. 그 발화에 시차가 있기 마련이지만, 한 번의 발화가 지금까지 그 인물의 몇 화를 뒤집어 보게 하는 데가 있다. 마치 오셀로처럼 한꺼번에 뒤집히는. 좀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인물이 그 보다 적은 비중의 상대를, 상대의 욕망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는데 저 수 많은 회차의 있으나 마나함을 뚫고 마침내 캐릭터가 뜻밖의 말을 할 때, 놀라웠다. 나 역시 그가 극의 진행을 위한, 주인공들을 위한, 매끄러운 이야기를 위한, 부속으로 생각했던 오만함을 봤기 때문이다. 말 없이 서 있는 어떤 조연에게도 주인공의 순간은 늘 있었던 것이다. 

 

이 상대성이 놀라웠고, 욕망을 드러내는 지점이 느리게 나타날 뿐이지 누구나 갖고 있는 거였다고 하니, 이 당연한 사실을 드라마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촬영, 구도, 연기가 좋게 말하면 클래식하고 나쁘게 말하면 클리셰라고 생각했으나 모든 것이 군더더기 없이 독자에게 잘 전해졌다. 

 

그런데 왜 제목이 막내 아들인가? 엄밀히 말하면 막내 손자 아닌가? 이걸 또 생각해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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