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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다정하고 말랑말랑한 얼굴

_봄밤 2023. 1. 2. 10:15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크리스마스날까지, 맛있는 음식을 아침점심저녁 해주었다. 밥때는 너무 금방와서 음식하고, 설거지하고, 또 음식을 내놓는 일이 그가 보낸 휴일의 전부였다. 덕분에 나는 잘 먹고 놀다가 돌아왔다. 연말에 더현대를 구경했고, 멋진 트리도 보았다. 해의 마지막 날에는 강남도미인에서 호캉스를 했다. 온천도 하고 쉬다가 신논현 근처의 밤거리도 걷고, 우육면이랑 딤섬도 먹었다. 아주 오랜만의 강남 거리는 놀랍고도 신기했다. 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팝업 스토어에 들어갔다가 새로운 놀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교보문고에 들러 새해 첫 책 <거기 눈을 심어라>를 샀다. 야식을 주는 호텔이었다. 일본식 라면은 깔끔하고 맛있었다. 배를 깎아 주었다. 아침에는 사과 조금. 조식 먹고 나와서 근처에 있는 청소년 도서관에 갔는데 시설이 훌륭해서 놀기 좋았다. 도서관인데 예약제로 운영되는 점이 조금 아쉬웠지만 근처에 살면 오기 좋을 것 같다. 

 

집에 와서 주방, 붙박이장, 모두 열어 해묵은 쓰레기를 버렸다. 더 많이 버렸어도 좋았을테지만 빠른 시간안에 버리는 게 급선무였다. 블라인드 먼지와 창틀의 먼지를 닦았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물건의 자리를 정비하고 옷정리를 다시 하고, 가구 배치를 조금씩 바꿨다. 기타줄을 갈고 배구공에 바람을 넣었다. 즐거운 준비였다. 이제 기타는 거치대에 안전하게 올라가 있다. 우리는 종종 통화를 했다. 다정한 혼자만의 시간. 서로의 점심을 보여준다. 저녁에 장을 보러 나갔고 버터를 사볼까 했는데 사용 빈도나 원함에 비해 너무 비싸서 그냥 돌아왔다.(만 원이었다)

 

시원한 배를 깎아준다. 정말 맛있었다. 물은 늘 뜨거운 물을 섞어서 따뜻하게 가져다 준다. 사진은 잘 못찍는데 늘 사진을 찍어주고 싶어한다. 다정한 손. 책 하나하나, 전시 하나하나 눈여겨 보던 모습. 집중하고 재미있게 보는 모습이 기억나. 이를테면, 나는 공간을 보는 것으로 그곳의 탐방이 끝나는데 콘텐츠를 하나하나 열어보는. 영어 중국어 온 세계의 팝업북을 열어보고, 으리으리한 팝업북을 가져와 짠 하고 보여주는. 증강현실 전래동화 읽기를 직접 해보는. 그래서 금도끼 은도끼 쇠도끼를 모두 받아오고 잃어버리는 주인공이 되어보는 사람. 그걸 옆에서 구경하게 해주는, 다정하고 말랑말랑한 얼굴. 새해에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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