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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내가 갈 수 없는 시간

_봄밤 2022. 10. 17. 17:38

우리 마음 아래로 내려가 보지 못한 채 시간을 쏟아 부었다. 서투르게 생겨난 길은 콸콸 쏟아져 내리는 급류였다. 신이 났을 것이다. 폭이 좁아서 물의 흐름이 빨라지는 곳, 비가 오면 갑자기 불어나는 곳, 폭을 넓히지 못한 채 내리는 물.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시간은 더 빠르게 흘렀다. 천천히 가자고 할 걸. 그렇게 빨리, 많이 주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에게 날들이 많다고. 약속을 미룰 걸. 그날 만나자는 얘기를 하지 말걸. 그는 언제나처럼 이해해 주었을텐데.

 

그날 만나지 않았더라면, 보폭을 멈추고 가만히 둘만이 있는 장소에서 우리를 만났더라면. 아니, 내가 나를 만났더라면. 그를 만나기 전에 나를 들여다 보았어야 했는데. 그리고 솔직하게 보여주었더라면. 마음 아래를 보여주었더라면. 당신의 마음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을텐데, 버려두지 않았을텐데 당신의 이해가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텐데. 죽은 마음을 붙들고, 아니 들지도 못하고 운다. 몸은 괜찮아지고 있는데 무섭도록 똑같은 세상에 당신이 없다. 나는 좀 더 잘 걷게 되었고 얼굴과 몸이 비로소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당신 앞에서 말이 얼어 붙어 떨어지고, 죽은 마음에 편지만 건네주었다. 받지 않았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나의 모든 것을 자신의 시간으로 가져가버렸다. 그곳은 내가 갈 수 없는 곳. 일상도, 목소리도, 손도, 걷던 길도, 수 많은 약속들도 사라졌다. 그러기에 아직 너무 따뜻한 날이었다.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강을 만들고 노을이 지는 걸 보고 싶었는데

그도 그랬을 것이다. 

 

시간이, 이 물이 다 마르고 나면 빨갛고 날카로운 바닥이 드러날 것이다. 생긴지 얼마 안된 날 것의 돌들. 여기저기 패여서 겨우 시간을 받아내었던 좁고 깊은 강바닥. 암석이 깎여나간 자리들. 거기에 들어가면 발에 상처가 난다. 깊게 베여 철철 흘릴 것이다. 오래 시간이 지나야 곱게 부서져 마침내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모래가 될텐데, 지금은 바닥을 밟을 수조차 없는데, 목까지 차 있는 시간에 잠겨, 이 물이 마르기 전에 수영을 할거라고 나는,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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