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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 전화했었네.

갑자기 눈물(고통의 화학적 작용)이 쏟아져서 한마디 말도 할 수 없는데 숀이 다시 부른다.

마리안? 마리안?

 

그는 아마도 좁은 부두에서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의 훼방으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도 침, 콧물, 눈물을 전파의 잡음으로 혼동했을 것이다.

그동안 그녀는 손등을 깨물며 그토록 사랑하는 목소리가,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이 그럴 수 있듯이 친숙했던, 그러나 갑자기 낯설게 바뀐 그 목소리가 불러일으키는 공포로 얼어붙었다. 끔찍하도록 낯설 수밖에 없다.

 

그 목소리는 시몽이 겪은 사고가 일어난 적이 없었던 시공간에서, 이 텅 빈 카페로부터 몇 광년은 떨어진 흠결 없는 세계에서 솟아난 것이니까. 그건 이제 불협화음을 낳았다. 그 목소리는. 세상을 혼란에 빠트렸고 그녀의 뇌를 찢어발겼다. 그건 이전의 삶의 목소리였으니까. (……) 마리안은 손에 든 휴대폰을 꼭 쥔다. 말해 줘야 한다는 두려움. 숀의 목소리를 파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지금 그대로의 숀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기회가 그녀에게 더 이상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시몽이 비가역 코마 상태에 빠지기 이전의 그 사라진 시간을 체험할 기회가 다시는 결코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그 목소리의 시간 착오에 종지부를 찍고 그 목소리를 여기, 비극적 사건의 현재 속에 다시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녀는 자신이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중에서

 

 

윤나무는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통째로 외웠다. 그 안팎의 방대한 정보도 다 외웠을 것이 분명하다. 나이, 성별, 직업이 다른 캐릭터를 최소 5명 이상을 연기했다. 한 바퀴 돌면 다른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와 몸이 나왔다. 마이크를 쓰지 않아 목소리가 뒷 좌석까지는 잘 들리지 않았는데,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면 그런대로 들을 수 있었다. 암전이 많은 극으로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불편할 수도 있다. 

 

윤나무는 분명 계산된 보폭으로 무대를 돈다. 설렁설렁 할 때도 있고 빠르게 돌 때도 있고 그게 몇 바퀴일 때도 있다. 이것조차 자연스러워서 숨을 죽이게 된다. 그는 목소리나 연기만큼 몸을 아주 잘 쓴다. 작은 제스처가 캐릭터를 만들고 독자를 극으로 데려간다. 하나의 장소로.

 

무대위에 놓인 하나의 테이블은 서핑 보드가 되었다가 수술실 침대가 되었다가 장기기증 의사를 묻는, 대답을 해야 하는 동시에 도망치고 싶은 테이블이 된다. 조명을 아껴쓴다. 조명은 방이 되었다가 골목이 되었다가 바가 되었다가 개복하는 가슴이었다가, 마침내 심장이 되어 들려서 움직인다.

 

연극은 소설보다 훌륭하다. 소설의 훌륭함만을 한 사람을 통해 이토록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압도적인 대사량은 1칭에서 3인칭을 오가면서 캐릭터를 문학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지만 언어가 부족해서 말할 수 없었던, 심연의 의도를 꺼내서 보여준다. 윤나무가 완성한 소설. 그를 통해 마침내 읽게 된 소설. 

 

살아있는 사람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보았는데, 이 극을 보면서 그의 손을 잡아도 되는지 망설여져 결국 잡지 못했다. 우리는 바로 옆에서 숨을 죽이며 보았다. 지금 생각하니 용기내어 잡는 것이 좋았을 것 같지만, 그때는 사랑을 저 앞에서 보이는 것이 두려웠다. 

 

극장을 나오니 천장에 파도가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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