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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의 나는 무엇을 알았을까? 또 무엇을 몰랐을까?



 







안드레아의 엄마 룽잉타이가 보낸 첫 번째 편지. 

책을 여럿 사가지고, 한 권 한 권 포장해두었다가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주고 싶을만큼 좋다.


책에는 단순히 엄마와 아들의 편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가장 편한 언어가 달라 '영어'로 정해서 썼기 때문에 상대가 의도한 단어가, 내가 풀어낸 의미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홍콩'과 '독일'의 시차에 걸린 메신저 내용도 있고, 연재되는 당시 독자들에게 받은 편지들도 수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독자와 나눈 간단한 문답까지도 함께다. 편지라는 개념이 너무나 변했지만 이 모두를 책이라는 고리타분한 물질로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 나를 이들이 대화 옆에서 떠나지 않도록 돕는다. 


매력적인 것은 안드레아가 '연재'에 임하는 쿨한 태도인데, 그는 자신의 감정을 최소한으로 걸러서 편지쓴다. 이 편지가 모두 공개되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는 듯이 18살의 감정에 충실하다. 글? 연재? 그게 뭐가 대단해? 라는 식의 태도가 아주 좋다. 글이란 자기를 포장하기 위해 얼마나 좋은 도구인가. 그러나 안드레아는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만 공들이는 것 같다. 아무리 타이완의 지성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라도 안드레아에게는 자신의 엄마다. 구시대적인 사고로 체면을 차리려 하거나 자신을 구속하질 않나, 이해할 수 없는 말로 가르치려 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짜증난다, 구리다 는 식의 말을 가감없이 하는게 새롭다. 그가 자란 곳은 실제론 독일이니까 타이완만해도 있을 법한 유교적인 것들이 거의 모두 배제되어 있던 거겠지. 


룽잉타이를 너무 깎아 내렸는데 사실 그녀의 글은 헛것이 아니다. 안드레아에게 자신이 살아온 세대를 전하며 더 깊은 물을 보여준다. 사유가 흘러가며 보여주는 풍경은 감정을 일렁이게 하지만 그에 묶여서 한없이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수필은 여기에서 멈춘다. 감정을 움직이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말하며 다음으로 이끄는 거다. 이런 감정의 사태에서 너는 어떤 이성을 보여줄 수 있니? 라는 듯.


첫 번째 편지가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18살을 회상한다. 가난했고, 무지했다. 그 후에는 유학을 하며 공부를 했지만 자신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나라를 되돌아보고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편지의 말미, 간쑤에서 온 피곤에 절은 아이의 얼굴을 기억하게 하면서 울컥하게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질문, 그 소녀와 연결되어 있니?라는 대목에서는 일렁인 목울대를 머쓱하게 한다. 그래서 너는 네가 속한 세대로, 함께 사는 이들과의 세상에서 너는 어떤 책임감을 생각하는지? 너는 혹시 그런 것들을 모르며(모른 척 하며) 그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놀는 것은 아닌지? 정의로운 척 세태에 대한 토론을 하지만 결국 자신의 삶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간쑤에서 온 그 여자아이의 삶은 세대가 아무리 변해도 남아 있다. 그렇다면 대체 무얼 위한 진보이며, 이런 것을 보지 못한 세대의 진전을 진보라고 할 수 있는지? 내가 살아온 그 미개하고 무식했던 나날과,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삶과는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거지? 말해봐, 너의 그런 삶에는 무슨 의미가 있지? 아픈 질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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