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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

네가 없던 아침

_봄밤 2016. 5. 13. 10:38



혹시 냉장고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서였어. 돌아가자면 갈 수 있었지만, 이미 한 번 다녀온 후라서 냉장고 닫힌 느낌을 재차, 재차 떠올려 보았어. 


문이 잘 안닫혀서 물을 꺼내고 다시 자리를 잡아 넣었던 참이었어자석의 당김, 냉장고와 문이 닫히는 자력이 분명히 손에 느꼈던 것 같아다시 버스를 기다렸어물을 한 모금 마셨어. 아침은 쿠키였고. 쿠키는 바스락 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어. 정류장은 지나치게 밝고 부슬부슬해. 너는 새벽같이 나갔어.


아까 돌아 갔다 온 건 현관 앞에 놓여 있던 택배 상자 때문이었어. 있던 대로 두었다가 이만치 걸어 나온 참이었는데 눈에 밟혔던 거야. 버리고 올 걸 그랬나. 보통의 박스를 대하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보통은 버리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혹시라도 네가 그 박스를 '어떻게' 쓸 일이 있어 놔둔 것인지 잘 모르겠어. 나는 너의 '어떻게'를 알지 못해서 우선은 그대로 두고왔어. 그런데 


세탁소까지 걸어나왔을 때, 그러니까 박스라는 것은, 그 안에 있는 물건을 위한 물건이므로 내부를 사용한 지금 그것은 그것으로 다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지. 그리고 혹시 박스가 필요해 두었더라도, 그 비슷한 것은 언제든 또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문 옆에 쌓아 놓았던 것은 필시 버리기 위한 거라고 다짐하게 되었어. 그러나. 


너는 보통, 그것을 다시 재활용 비닐통부에 넣은 후 한 짐이 되고서야 버렸던 것 같아. 나는 걸음을 멈춰. 나는 지금 쓰레기 버리기를 고민하고 있어. 이건 네 생활을 이해하는 부분이므로그 면에는 네 생활에 들어가도 될까, 하는 고민이라고 해야겠지. 와중에 한켠에는 이런 생각이 도착하고 있어. 피곤에 돌아와 네가 문을 열었을 때, '깨끗한 현관을 주고 싶다' 그러자 망설임이 말끔해졌어. 나는 돌아가 그 사는 사람들이 하는 대로 건물 근처 기둥에 내 놓고 왔어. 


언젠가 생각했던 대로 네 방을 치우고 나왔어. 방을 잘 못 치우지만 치우는 것을 자주 하려는 내가 정리를 애쓴 흔적을 너는 발견할 수 있을거야. 그건 마치. 바닥에 묻을 수 없어서 하늘 가까이 이만한 부피의 전선을 걸어 놓은 전설주, 뭉텅이를 허공에 걸어놓았던 태국의 전선들 같을 거야.... 위치만 바뀌었을 뿐 정리라고는 할 수 없는 것. 너의 생활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는 네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것은 그저 정리의 모습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는 걸 알게 될거야.


아침에 네가 네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나갔을 때, 나도 거기 있었어. 나는 너의 어떤 것도 읽지 않았지만, 그러나 너는 글씨를 즐겨 남기는 사람은 아니므로 그다지 걱정할 일은 아니었겠지만 그러나 너의 책상에는 너의 일상이 있고 서랍에는 네 습관이 있고 옷장에 네가 걸려 있는데도 아무 일 없이 가더라고. 어쩔 수 없이 곳곳에서 너를 읽을 수 밖에 없었어. 네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인지, 보여주어도 되는 모습인지 알지 못한채. 얼마든지, 너 읽어도 좋음을 주었던 그날. 나는 돌아와 '네가 없던 아침'이라고 적어 놓았어.


혹시 네가 너의 모든 것을 놓고 갔을 때, 거기 있는 나 역시 너의 어떤 부분이라는 이해였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해. 






그런데, 왜 냉장고 문은 열어놓았던 거야.

 

웃으며, 너를 삼주 만에 만났을 때였어.

그 일주일, 다시 돌아갈까 했던 불안을 잊었고, 쿠키는 바람에 날려서 먼지가 되고 있었고, 다시 일주일, 냉장고가 잘 닫혀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박스들은 치워지고 있었고 그리고 일주일, 냉장고는 아주 아주 작아져 주사위처럼 있었어. 건조한 아침에 물은 늘 맛있어. 네가 없었던 아침을 지나 나 집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지나 그리고 네가 도착한 집. 깨끗하다는 말을 듣고 잠이 들었지. 하루를 꼬박 열려 있던 냉장고를 마주했겠지. 현관을 열었을 때


그로부터 냉장고가 주사위가 될만큼 시간이 지나서

너는 '현관에 노랗게 불빛이 있었다'고 알려주었지

불안이 작아져 달그닥 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을 때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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