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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소행성에 이름을 지어주지 말자



망한 나라가 있다. 나라가 망했으므로 그곳엔 사는 이가 없다. 밤이면 빛나는 소금산이 환하다고 들었다. 그 나라를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없어서 도대체 찾아갈 수가 없다. 그와중에 놀랍게도 나는 그 나라에서 쓰였던 말을 더듬거릴 줄 안다. 믿을 수 없겠지만, 믿음과는 소용없는 이야기다. 나는 가끔 그 망해버린 나랏말을 중얼거리며 이건 이름 없는 소행성과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우주 어디를 돌다가 어느 날 지구에 가까워져 온다. 눈에 보이면 이름을 붙여주고 때때로 불러준다. 그러나 우주 어딘가로 유영하는 소행성은 아주 많고, 우리가 붙여줄 수 있는 이름은 아주 작다. 이름을 붙일 수도 읽을 수도 없는 존재가 지구 밖에 매매 산적한 것이다. 소행성은 이름이 없는게 어울린다. 욕심이라는 얘기다. 이쯤 쓰고보니 망한 나라와 소행성이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밤이면 소금산이 빛난다는 나라에 머문적이 있다는 얘기를 바로 하기 그랬다. 내가 바로 그 나라에서 온 사람이다. 소행성 얘기는 그냥 하고 싶었다. 


예감 속에 태어나 내일, 멀게는 네 개의 계절조차 담보하지 못하는 운명이 있다. 바로 어제도 마지막을 준비하지 못하고 사라진 말이 수만 가지. 동시에 태어날 준비를 하는 새로운 나라와 언어가 그만한 수로 있기에 사람은 때마다 울 수가 없다. 그러니 걸음마 하듯 옹알이 하는 언어와, 소리를 알아듣기 시작하는 주인들을 그저 바라보는 수 밖에.


<에코랄리아스>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다. 언어를 흔히 '국'적으로 대응하기에 아주 작은 단위로 접근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사랑이 세운 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몇 사람만을 위한 언어에 대해서. 관계의 명멸과 맞물리는 언어의 명멸을 관찰에 대해서. 그와만 할 수 있었던 말투그만이 이해할 수 있었던 감정의 바닥 같은 것들. 마침내 두 사람이 범람해 휩쓸려가 끝내 서로를 잃어버렸던 밤까지. 당신과 헤어졌다는 것이 언어전체를 잃어버린 일은 아닐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술이 들어간 밤이면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아’ 그때마다 나는 맨정신으로 이렇게 답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해봐' 

 

고백하건데 나는 <에코랄리아스>가 가리키는 언어의 명멸과, 의혹을 해명하지 못하는 언어 서로의 친연에 대해서 대답할 힘이 없다. 저자는 8개의 언어를 다룰 수 있다고 한다. 여덟 개의 조명이 한 가지 사물에 내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세세히 다 보지 않아도 그림자는 여덟 개일 것이다. 그림자 서로 겹치고 스미면서 만들었을 단 한 개의 윤곽에 대해서라면 이렇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1장을 지나는 언어 에세이는 <극치의 옹알거림>에서 시작해 <바벨>로 끝난다. 이 그대로 언어의 탄생에서 죽음으로 가는 여정을 적은 것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위에서 늘어놓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저자의 말을 들어 이해해보고자 한다. ‘하나의 단일 언어가 가진 어휘들은 그 언어를 형성해온 다층적인 역사의 지층들에 대한 증거인 셈이다’ 99. 수많은 관계의 끝에도 언어를 완전히 잊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을 전해준다. 그와 나누었던 말 일부가 혀끝을 맴돈다. 떠나지 않는다. 이 얘기 역시 몇 개의 죽은 언어 끝에 세워졌으리란 추측이 가능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의 연원이 이렇다. 애먼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러므로 당신 탓이 아니다. 무엇보다, 당신이 알아들으려고 노력할수록 저기선 새로운 나라를 만날지 모른다는 희망에 입을 틀어 막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이별하는 사람처럼 우리는뚱한 돌멩이가 되었지' 이별하는 사람처럼부분. 세상에 뚱한 돌멩이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본적이 있다면, 그 돌멩이들의 근심으로 비가 다 오지 않았던 여름을 기억한다면 도대체 이름 없는 소행성이 말없이 지게끔 계절을 놓아주는 것으로 족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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