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온천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가기 전에 수영복을 챙길까, 고민하다가 예전이 생각났습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수영장에 들어가지 못했거든요. 여행 내내 짐이 되었던 일입니다. 그 노천탕은 매우 싼 가격이었는데(한화 이천원 정도)수영복을 입지 않으면 출입이 안되는 곳이었습니다. 때마침 그날 아침부터 마침 비가 왔고, 비를 맞으며 온천 할 생각은 없었기에 연기가 펄펄나는 온천수만으로도 즐거우리라 생각했습니다. 라고 말은 해도, 온천을 가면서 반쯤 포기하고 채비한 것이지요. 태도가 이러했습니다. 옷을 다 벗고 한 시간쯤 있기에는 마음이 없었던 겁니다. 어쩌면 다녀왔다, 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만족할 것이었죠.


온천을 구경하러가던 길목에, 큼지막한 정자가 있었습니다. 현지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고 있었습니다. 주말이라서 그들의 일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슬리퍼를 신고 편한 옷차림으로 말을 두고 있는 걸 보니 내기 장기는 아닌 것 같고, 서로의 친연은 알지 못하더라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구나. 정도는 생각해도 좋았을겁니다. 마침 판이 끝나고 새롭게 말을 두길래 시작을 어떻게 하는지,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곁이라고 해도 서성이는게 보이지 않을정도의 거리였으니 곁이라고 할만한 건 아닙니다만 그정도의 마음으로 있었다고 해야겠지요. 말을 두는게 언뜻언뜻 보였습니다.  대만의 장기는 어떤지 살피던 차, 아. 그것은 엉망이었습니다. 아무렇게나 두더군요. 차나 포를 두는 격이 전혀 없고 졸도 헝클어져 있었습니다. 별볼일 없군. 하면서 고개를 돌리려는데, 궁이 안보이는 겁니다. 궁이 없는 장기가 있던가, 눈을 씻고 다시 봐야했습니다. 대만의 장기에는 궁이 없어도 되는 걸까. 의문하다 다시 돌린 고개에 저는 보게 됩니다. 모든 말의 크기가 같은것을요. 졸과 포와 사와 궁의 크기가 같아 궁은 그 이름처럼 넓습니다. 움직임에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두 선의 교차에서 모두 같은 크기를 차지했습니다. 이름과 부여된 능력의 크기가 달랐을 뿐, 이들이 말로서 존재하는 일에는 조금의 차이도 없었습니다. 새삼스러운 사실인데요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왜 그 전에는 모든 말이 같아야 함을 알지 못했을까요. 비로소 온전한 장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여행 중에 쓴 이야기 입니다. 찾아간 여행지가 아니라, 그 가는 중에서 보았던 것들이 남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술을 한잔 했는데요, 오백미리를 마시고는 토를 하고 정신이 어지럽습니다. 술에 취해서 글을 쓰느냐고요, 꽤나 깼기 때문에 괜찮습니다만 당분간 좀 아플 것 같습니다. 아픈 사이에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잔뜩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막내는 방금 산책을 나갔고, 둘째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있는 구월 한 저녁입니다.




'풍경의 맛'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월이 지나면 깨워주세요  (0) 2015.10.12
그때 내게 등을 보여준  (0) 2015.09.21
근황  (0) 2015.07.30
어느 날의 점심  (0) 2015.05.25
호박맛젤리  (0) 2015.04.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