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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어느 날의 점심

_봄밤 2015. 5. 25. 00:14




점심을 넘겨버린 세시, 미팅이 끝나고 근처 식당을 물었다. "아직 점심을 못드셨구나, 직원식당에서 제 이름 대고 드셔요." 황량한 곳에 혹시 모를 가게를 물었다가 기대없는 친절에 화색이 돌았다. 나와서 실제로 그 식당에서 밥을 먹는 어느 직원에게 그 위치를 물으니. "거기 끝났어요." 모니터로 돌리는 고개가 불퉁했다. 세시면 식당도 끝나고 정리에 들어갔을 시간...이겠구나. 역시 뭘 잘 모르는 부장과 그런 걸 왜 묻느냐는 경리의 입은 이렇게 달라서, 원하지도 않았던 기대를 잠깐 가졌다는 이유로 배는 더 심하게 찌그러졌다. 점심을 먹지 못하는 사정은 각자 언제라도 있었을 것. 아쉬움이 눈에 보였는지 내려가면 식당이 있다고 한다. "거기 중국집도 있고 한식도 있고 여러가지 있어요." 여러가지가 있을 곳은 아니었는데, 그렇다는 말을 믿고 내려가보았다. 하나의 큰 가게에 간판이 두 개가 걸려 있다. 중국성 같은 이름과 김밥천국 이라는 이름의 변형. 내부의 반은 좌식이고 반은 입식, 마찬가지로 점심이 끝난 가게라 손님이 없었다. 


그 시간에 사람이 있는게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의아한 사람으로 그 식당에 앉아있었다. 이곳을 이용할 대다수의 사람은 이 주변의 물류창고, 중에서도 사내식당이 없는 회사에 다니거나, 그런 복지를 받기 어려운 하청 노동자일 것이었다. 매일매일 찬과 국이 바뀌는 한식 뷔페가 들어왔다. 그것이 제격이었다. 그러나 김밥과 떡볶이, 라는 이름이 너무 흔해서 그것을 시켰다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요기를 기다렸다. 그런 시간에 왔다는 것이 폐 같기도 한 느낌도 들었거니와. 한식 뷔폐 외에 주력으로 밀고 있는 것 같은 짜장면이나 짬뽕 같은 걸 앞에두고 후루룩 허기를 채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소란없이 먹고 나가야 한다. 말하자면 저녁 오픈을 위해 잠시 가게 문을 닫고 준비하는 시간을 침범하는 중이었으며, 그런 예의 차리는 말은 집어치우고 이곳이 고르길 원하며, 가게에 어울리는 점심을 먹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문 가까이에 있는 식탁에 앉았다. 문에는 두꺼운 비닐, 뭐라고 해야하나 두께가 있는 투명한 비닐 발이 바깥 바람에 안쪽으로 바깥쪽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주방에는 일사분란한 아주머니들이. 그리고 나와 좀 떨어진 자리의 식탁에서는 남자 둘이 식기의 물기와 수저의 물기를 닦고 있었다. 숟가락 포장을 끼는 일도 잊지 않았다. 파주는 사람이 왠만치 잘 보이지 않고 무엇을 하는지 잘 알 수 없는 건물이 휑뎅그레 크게 서있는 곳으로. 가끔은 큰 도로를 따라 탱크가 지나가는 괴성도 한적한 가운데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곳이었다. 그 사이 김밥이 나왔다. 이 근방에서 찾아볼 수 없는 김밥집으로 비교 대상이랄게 없는 김밥이었다. 흑미쌀을 섞어서 보랏빛이 났고, 특별히 망쳐버리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지 않으면 맛이 없을 수 없는 김밥의 특성상 무던하게 먹을 수 있었다. 하나하나 먹는 동안 저 앞에 식기의 수도 높이를 달리해 쌓였으며-숟가락도 잘 포개지고 있었다. 그 일을 하는 남자 둘의 주의력을 곰곰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습니까. 그로 말할 것 같으면 국적은 모르지만 아마도, 동남아시아에 속할 어느 나라의 청년으로. 노란색이 많이 도는 체크남방을 입고 있었고. 예의 집중을 할 때면 나오는 입술 같은 것이 그의 유년을, 그의 아버지를, 그의 동생과 친구를, 어머니의 손, 언젠가 그 혼자 지낸 밤을 상상하게 도와주었다. 


김밥을 다 먹어가던 차, 떡볶이가 나왔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기대보다 더 국물이 많고, 떡의 길이가 제각각인, 역시 이 근방에서 경쟁 경합이 불가능한 유일무의한 떡볶이를 앞에 두고 있었다. 맛이 그렇게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맛있다고 하기에는 또 무슨 맛인지 설명하기 애매해 두 어번 떡을 더 집었으나. 뜨겁게 방금 조리해서 나왔다는 것과, 치즈 떡볶이라는 이름에 맞게 노란 치즈 한장이 뜨거운 김에 풀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만이 장점인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걸 후후 불어 먹고 있는 동안, 저 앞에서 숟가락 싸는 일이 거의 끝나갔다. 행주를 받아들어 이제 식기의 물기를 함께 닦기 시작했다. 당신은, 식기와 숟가락을 닦고 있습니다. 


나는 동남아시아라고 막연히 상상하는 그곳의 햇볕을 역시 막연히 안다. 어떻습니까. 어떤 목소리와 눈빛으로, 악수를 할 때 손 안쪽에 어떤 힘이 들어가 주변과 인사를 합니까. 멀리 날아와 파주,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그려야 할지 잘 모르겠는 지방에서 식기와 숟가락의 물기를 닦는 것은 어떤 뜻을 갖고 있습니까. 당신의 인생과 당신의 아버지와 마을과 형제들에게서 말입니다. 그것은 물론 물기가 마르고 보송보송하게 건조되어 다시 이 가게에 쳐들어올 허기를 채우는 중한 일입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대신 이런걸 생각합니다. 혹시 당신은 집에 돌아가 당신이 가진 언어로, 아니면 더듬하게 배운 이곳의 말로 그날 오후 식당에 들어온 어떤 여자의 점심에 대한 이야기를 쓰진 않았습니까. 저 사람은 어쩌다가 밥 때도 놓치고 이곳에서 밥을 먹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한 문장쯤 남기진 않습니까. 내가 기대하는, 나의 상상력으로 겨우 그려 볼 당신의 유년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내리 몇 시간 동안 앉아 일을 하고 있지요. 종이가 찢길까봐 조심하며 숟가락 머리만을 보며 그걸 씌우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수저 볼록하고 오목한 곳에 당신 얼굴이 한 번쯤 비춰졌을 것이고, 비친 것을 흰색의 종이로 덮는 과정을 무수히 했을테니까요. 당신 얼굴이 셀 수 없이 나타났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식기를 닦고 있던 또 다른 당신, 당신의 유난히 건장한 어깨도 기억합니다. 그 어깨는 무엇으로 지금의 크기를 갖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자라 그날 한데 만나게 되었습니다. 혹시 일기라는 걸 쓰시나요? 나는 줄곧 남기고 있습니다. 의미 없는 일을 없는대로 남기고 있습니다. 하여, 나는 그날 식탁 건너 당신들의 작업을 알게 모르게 보았고, 나의 점심은 당신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해야 완성입니다. 


떡볶이에 지쳐 헤집어 놓을 때쯤 밖에서 어떤 남자가 들어왔다. 관리자쯤으로 보였고 의자에 앉아 장부를 뒤적이고 있는 남자에게 이름만 들어도 알 외제차 중고 시세를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여기 파주,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그려야 할지 잘 모르겠으며그저 좀 더 최선을 더 할 수 없겠느냐고, 소리지르고 싶은 도시에서 였다.

 

떡볶이를 예상대로 남기고 나왔다. 2인분에 가까운 1인분을 혼자 먹기는 좀 양이 많았던 까닭이었다. 중간중간 성의없이 잘린 양배추가 좀 맛이 간 모양으로 있기도 했지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숟가락은 꽤 많이 쌓였다. 일을 하는 이들의 오늘 저녁이나, 내일 저녁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모레는? 모레는 역시 좀 걱정이 된다. 나의 모레처럼. 아무 이유 없이 부서져도 슬프지 않는 바닷가 서늘한 모래탑처럼. 무너지게 생겼으니까. 그러나 무너짐을 묻지 않는 한가로운 발가락, 갑자기 주저앉아도 아름다울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의도없는 나의 생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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