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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호박맛젤리

_봄밤 2015. 4. 19. 00:20




지하철을 기다리며 


신문과 몇 종류의 빵, 껌 등을 파는 매점에서 왠일로 호박맛젤리를 샀다. 이곳의 물건은 다른 곳에서처럼 같은 이름의 물건이겠지만 유난히 그곳에서는 궁색해보이는 특징이 있었다. 궁색을 부러 좋아하지 않는 요즘 사람의 특성상 지하철의 번잡함과는 달리 그곳은 물건을 파는 곳인지 의심이 들정도로 사람이 없는 것 또한 특징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복권이 있었던가? 복권이 있다면 단박에 궁색은 공감같은 것으로 둔갑한다. 궁색을 피하다가도 일주일치의 희망을 묻는 곳이 될 수 있으니, 우리의 얼굴은 양면이 아니니 잘 살펴 지나갈 일이다.


매점의 물건 중에 호박맛젤리라는 상표도 연원도 모르는 물건이 있었는데 그곳의 궁색과 잘 어울렸다. 개당으로도 판매하는 것 같았는데, 백 원이라는 참으로 오랫만에 들어보는 가격이었다. 때마침 나는 껌이 아니라 젤리 같은 것을 먹고 싶었 정도는 두 개가 적당했으므로 인기가 엄청 많거나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거나 -아마도 후자의 것이 거의 분명한- 호박맛젤리가 수북히 쌓인 사각의 소쿠리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제법 봉지가 허술하게 포장돼 선명한 주황의 젤리가 겉으로 보이기도 했다. 역시 방심할 수 없군. 생각을 하며 그중에서 튼튼하게 포장된 것을 집어들어 안을 물었다. 안에는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앉을 곳'이 있었다. 지하철 도착하는 소리가 한시간에도 예닐곱 번은 들릴 것이었다. 티비 소리가 작게 나오고 있었고-그것은 분명히 재미가 없을 것 같았지만- 소리가 있다는 것에 왠지모를 안심이 되었다. 안쪽은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마침내 세 번째는 조금 힘을 주어 저기요, 라고 말했고 그 말은 티비 소리보다 조금 커 마침내 반응이 있었다. 


나는 동전을 쥔 손을 내밀었고, 아주머니는 반사적으로 손을 건넸다. 손 보다 먼저 보인 얼굴은 큰 입술이 유난히 붉었다. 아주머니는 약간 멍한 얼굴이었다. 호박맛젤리 두 개가 보였을 것이고, 그 다음에 동전 두 개가 보였을 것이다. 아주머니의 손으로 동전이 건네졌다. 아주머니는 멍이 덜 깬 얼굴로 큰 입술을 약간 벌리고 웃으셨다. 가지런하지 않은 치아가 억지로 웃는 기분을 보탰다. 아주머니의 웃음에선 웃음이 보여주는 반가움과 동시에 힘이 빠지는 듯한, 표정이 있었다. 


그러나 아주머니의 얼굴은 금방 지나갔다. 나는 곧바로 환승을 위해 걸었으며 마침 필요했던 호박맛젤리 맛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호박엿 맛이 나는 주황색 젤리로, 조금 더 엿 맛을 살리거나 아예 주황색 엿이었다면 어떨까 싶게 좀 보태주고 싶은 맛이었다. 맹숭한 젤리가 입속에서 금방 사라졌다. 몇 개를 더 살걸 그랬나 하는 마음이 들무렵 두 개의 백원짜리 동전, 이 실물의 동전을 받아든 아주머니의 표정이 생각났다. 아주머니는 붉은 루즈로 입술이 컸. 이렇게 좁은 곳에 앉게 되어, 이렇게 작은 돈을 쥐고서, '저기요'라는 이름으로 있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말들이 웃음으로 들린 것 같았다. 이렇게 작게 티비를 켜 놓아도 지하철 소리를 물리칠 수 있단다. 라는 표정이 있지 않았던가? 호박맛젤리가 되게 먹고 싶다는 건 아니고, 별안간 한주먹 집어 들고 포장을 까고 싶다는 말이다. 다섯개쯤 먹으면 호박엿마냥 단 맛이 배어나올텐데, 그걸 그저 우물거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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