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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그때 내게 등을 보여준

_봄밤 2015. 9. 21. 23:50




그때 내게 등을 보여준



유리간 한칸만큼 공중을 두는 긴장이 사진에 놓였다. 구부정한 어깨, 그저 앞을 볼 것 같은 시선. 잠시 말 없을 것 같다. 


혹여 남자가 좀 더 의젓하게 앉았거나, 여자의 하나로 묶은 머리가 안쪽 어깨로 내려오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이들 사이에 놓인 물건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마음 들었을까. 이들은 더위에 쉬고 낯섬에 쉰다. 잠깐은 말이 없어도 좋겠지. 상대의 곤궁을 완전히 다 알 수도 없고, 얼굴에 그대로 그려낼 수도 없다. 지곡열 가는 길이었다. 옛 집을 보러온 이들이 소란했다. 안쪽에는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 아이들에 부모가 씨름을 하고, 쉼없이 밀려드는 이들을 안내하는 어르신의 쇳소리가 문지방을 오갔다. 온천을 하러 왔을리는 만무하다. 중간 턱에 있는 도서관에 왔더라면 그렇겠다. 애틋하다. 등을 보는건 좋구나. 오래 보고 싶었다. 



+

일주일만에 출근했다. 


자기 전에 시집을 한 권 챙겼는데, 거의 십자가를 챙기는 마음이었다. 동생은 다섯시에 일어났고 실은 그때부터 나도 깨어 있었다. 아침에 친구에게 세차게, 아름답게 늙자고 말했다. (의기있게 써내려가다가 '약속했다'고 할 뻔했다) 약속은 아니었다. 새벽이 늦기 전에 편지를 써야지. 시간을 곱게 곱게 갈아 쓴다. 만원 버스에서 부은 발등과 나 모르게 나오는 한숨이 그간에선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아주 고운 가루여서, 내가 전하려던 글자만 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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