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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

미국의 목가-필립 로스

_봄밤 2014. 7. 19. 00:19


 # 액자 유리가 깨지거나, 사진이 불타오르거나

페이퍼백(1998), 하드커버(1997), 문학동네(2014)


(페이퍼백과 하드커버를 낸 출판사가 다르다. 

페이퍼백을 낸 출판사는 랜덤하우스 임프린트 빈티지 출판사. 

이후 그의 작품이 이곳에서 계속 나옴)







형은 도대체 어떤 인간이야? 알기는 알아? 형이라는 사람은 늘 모든 것을 매끈하게 다듬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형이라는 사람은 늘 온건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남의 감정을 다치게 할 것 같으면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타협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자족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상황의 밝은 면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야. 예의바른 사람이지. 모든 것을 참을성 있게 견디는 사람이지. 최고이 예절을 갖춘 사람이지. 절대 규약을 깨지 않는 아이야. 사회가 뭘 하라고 하건,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 예절. 하지만 예절이란 건 형이 그 얼굴에 침을 뱉어야 하는 거라고. 하긴 뭐, 형 딸이 형 대신 침을 뱉고 있네, 안그래? 네 사람? 형 딸이 예절을 단단히 혼내줬네.

·

아무 문제 없어. 아무 문제도. 다만 바로 그게 형 딸이 평생 폭탄으로 날려버리려 했던 거라는 얘기야. 형은 사람들한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시모어. 형 자신을 비밀로 유지해. 아무도 형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 틀림없이 딸한테도 형이 누구인지 절대 알려주지 않았을걸. 형 딸은 그걸 날려버리려 했던 거야. 그 겉면을. 형의 모든 좆같은 규범들을. 딸이 형의 규범들에 무슨 짓을 했는지 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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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트로피를 타. 늘 올바르게 움직이지.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아. 미스 뉴저지하고 결혼을 해, 젠장. 하지만 이걸 한번 생각해봐. 왜 형수하고 결혼했어? 겉모습 때무이지. 형은 왜 그런 모든 일을 하는거야? 겉모습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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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여자를 사랑했어! 그 여자를 너무 사랑해서 아버지하고도 맞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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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는 씨발 형이 미끄러져 빠져나가도록 그냥 내버려뒀어. 그걸 모른다는 거야? 만일 아버지가 이랬어봐. '너는 절대 내 허락을 못 받아. 절대. 나는 반은 이쪽이고 반은 저쪽인 손주는 두지 않을거야.' 그랬다면 형은 선택을 해야 했을 거야. 하지만 형은 전혀 선택할 필요가 없었지. 전혀. 아버지가 그냥 넘어가주었으니까.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아무도 형이 누구인지 모르는 거야. 형은 드러나지 않았어-그게 핵심이야. 시모어, 드러나지 않았다고. 그래서 형 딸이 형을 날려버리겠다고 결정한 거야. 형은 어떤 것에 관해서도 솔직했던 적이 없고, 그애는 그것 때문에 형을 싫어한 거야. 형은 늘 자신을 비밀로 했어. 형은 선택을 하지 않아. 절대.

·

형은 사람이 뭔지 안다고 생각해? 형은 사람이 뭔지 조금도 몰라. 형은 딸이 뭔지 안다고 생각해? 형은 딸이 뭔지 조금도 몰라. 형은 이 나라가 뭔지 안다고 생각해? 형은 이 나라가 뭔지 조금도 몰라. 형은 모든 것에 가짜 이미지를 갖고 있어. 형이 아는 것은 오로지 좆같은 장갑뿐이야. 이 나라는 무시무시해. 당연히 그애는 강간을 당했겠지. 형은 그애가 어떤 사람들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당연히 밖에 나가면 강간을 당하지. 거긴 올드림록이 아니야, 형. 그애는 저 밖에 나가 있단 말이야, 형. 미합중국에. 그애는 세상에, 저 밖에 있는 미친 세상에 들어간 거야. 거기에서는 벌어질 일들이 다 벌어지고 있어. 그런데 뭘 기대해? 뉴저지 주 림록 출신의 아이, 당연히 그애는 저 바깥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지. 당연히 빌어먹을 혼란에 빠져버리지. 그애가 뭘 알 수 있겠어? 그애는 세상의 저 바깥에 있는 야생의 아이나 다름없어. 아무리 세상을 겪어도 부족하다고 생각해. 지금도 여전히 장난을 치고 있어. 매카터 하이웨이 옆의 방에서. 왜 아니겠어? 누군들 안그러겠어? 형은 그애한테 소젖을 짜는 삶을 살아갈 준비를 시킨 건가? 도대체 어떤 삶을 살 준비를 시킨 거야? 부자연스러워. 다 인공적이야. 모두가. 형이 품고 사는 그 가정들이. 형은 여전히 아버지의 꿈의 세계에 있다고. 여전히 저 위 장갑의 천국에 루 베보르와 함께 있어. 장갑이 압제자가 된 집안, 장갑이 을러대는 집안. 세상에 오직 하나, 여성용 장갑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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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2쪽 부분 발췌


<미국의 목가2>, 필립 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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