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기념식수-이문재

_봄밤 2014. 1. 4. 13:36



기념식수




이문재


형수가 죽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감자를 구워 소풍을 간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개구리들은 땅의 얇은

천정을 열고 작년의 땅 위를 지나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므로

교외선 유리창에 좋아라고 매달려 있다

나무들이 가지마다 가장 넓은 나뭇잎을 준비하려

분주하게 오르내린다

영혼은 온몸을 떠나 모래내 하늘을

출렁이고 출렁거리고 그 맑은 영혼의 갈피

갈피에서 삼월의 햇빛은 굴러 떨어진다

아이들과 감자를 구워 먹으며 나는 일부러 

어린왕자의 이야기며 안델센의 추운 바다며

모래사막에 사는 들개의 한살이를 말해 주었지만

너희들이 이 산자락 그 뿌리까지 뒤져본다 하여도

이 오후의 보물찾기는

또한 저문 강물을 건너야 하는 귀가길은

무슨 음악으로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가

형수가 죽었다

아이들은 너무 크다고 마다 했지만

나는 너희 엄마를 닮은 은수원사시나무 한 그루를

너희들이 노래부르며

파놓은 푸른 구덩이에 묻는다

교외선의 끝 철길은 햇빛

철 철 흘러넘치는 구릉지대를 지나 노을로 이어지고

내 눈물 반대쪽으로

날개도 흔들지 않고 날아가는 것은 

무한정 날아가고 있는 것은



이문재, 『내 젖은 구두 벗어 해 에게 보여줄 때』, 민음사, 1997.



ㅡㅡ


푸른 구덩이. 이곳에 시를 심는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칠 일째-이응준  (0) 2014.01.21
늑대가 나타났다-이현승  (0) 2014.01.16
겨울 전부  (0) 2014.01.15
오키나와, 튀니지, 프랑시스 잠-김소연  (0) 2014.01.07
나와 거북 1  (0) 2014.01.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