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키나와, 튀니지, 프랑시스 잠




김소연



 우리가 갈 수 있는 끝이

 여기까지인 게 시시해

 소라게처럼 소라게처럼


 우리는 각자

 경치 좋은 곳에 홀로 서 있는 전망대처럼

 높고 외롭지만

 그게 다지


 우리는 걸었지 돌아보니 발자국은 없었지

 기었던 걸까 소라게처럼 소라게

 처럼


                               +


 신중해지지 않을게

 다만 꽃처럼 향기로써 이의 제기를 할게

 이것을 절규나 침묵으로 해석하는 건

 독재자의 업무로 남겨둘게


 너는, 네가 아니라는 이 아득한 활주로, 나는 달리

고 너는 받치고 나는 날아오르고 너는 손뼉을 쳐줘

우리는 멀어지겠지만 우리는 한곳에서 만나지 그때마

다 우리가 만났던 그 장소들에서, 어깨를 겯는 척하

며 어깨를 기댔던 그곳에서


 "좋은 위로는 어여쁜 사랑이니, 오래된 급류가의

어린 딸기처럼"*


                              +


 소라게 한 마리가 집을 버리는 걸 우리는 본 적이

있지 팔 한쪽 다리 한쪽을 버려가며 걷는 걸 본 적이

있지 그때 재스민 한 송이가 떨어지는 걸 본 적이 있

지 소라게가 재스민 꽃잎을 배낭처럼 업고서 다시,

걸어가는 걸 우리는 본 적이 있지


 우리가 우리를 은닉할 곳이

 여기뿐인 게 시시해

 소라게처럼 소라게처럼

                  

                             +


 나의 발뒤꿈치가 피를 흘리거든

 절벽에 핀 딸기 한 송이라 말해주렴


 너의 머리칼에서

 피냄새가 나거든

 재스민 향기가 난다고 말해줄게





* 프랑시스 잠의 시 「시냇가 풀밭은」에서 빌려 옴.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문학과 지성사, 2013.




----



우리는 각자/경치 좋은 곳에 홀로 서 있는 전망대처럼/높고 외롭지만/그게 다지


그게 다지


도착해도


소라게처럼 소라게처럼

껍질을 버리고

팔 한쪽 다리 한쪽을 버려가며


도착해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칠 일째-이응준  (0) 2014.01.21
늑대가 나타났다-이현승  (0) 2014.01.16
겨울 전부  (0) 2014.01.15
나와 거북 1  (0) 2014.01.07
기념식수-이문재  (0) 2014.01.04
댓글